이 모든 것은 한 통의 이메일에서 시작되었다. #1편

25년 여정의 시작 - 좌충우돌 미국 이민의 시작

by 미더유


내 삶은 온통 예측 가능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지방의 중견기업 개발팀 팀장. 나쁘지 않은 직위와 안정적인 월급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이었다.


결혼 2년 차, 한 살배기 딸아이와 아담한 아파트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안식처였다. 더 이상 모든 걸 걸고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기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가졌고 또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틀에 짜인 안온한 삶이라는 성에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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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떨쳐낼 수 없는 꿈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작은 브라운관 TV 속에서 보았던 넓은 마당과 바비큐 그릴, 강아지가 뛰어노는 풍경. 당시 내게는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던 '미국에서의 풍요로운 삶'이었다.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유일한 숨구멍이었던 그 꿈은, 직장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독립한 후에도 끊임없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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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던 미국 합작 회사 설립 프로젝트의 기술 담당자로 발탁되어, 2년간의 안정적인 미국 출장을 눈앞에 두었던 때였다.


무려 1년 6개월간 공들여 준비해 온, 이제 막 손에 잡힐 듯했던 꿈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한 통의 이메일로 무너졌다. 본사 기획팀에서 보내온 메일에는 '미국 장기 출장 프로젝트 취소'라는 차갑고 건조한 문장이 박혀 있었다.


IMF 이후 악화된 회사 상황과 미국 파트너사와의 합의 불발이 그 이유였다.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모래성이 한순간에 파도에 쓸려 내려가듯, 나의 꿈은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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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그 충격과 실망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어렵게 잡았던 기회를 놓쳤다는 상실감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의 미국 생활의 꿈은 다시 한번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 가로막혔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무렵, 운명처럼 두 번째 이메일이 도착했다. 1년 6개월간 함께 프로젝트를 검토하며 친분을 쌓았던 미국 파트너사 간부에게서 온 개인적인 메일이었다. 구체적인 제안은 없었지만, 프로젝트가 취소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당신과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암시가 담겨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메일은 어떤 약속이나 보장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순간, 두 번째 이메일이라는 운명의 편지에 이끌려 무모한 미국행을 결심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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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토록 무모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더 늦기 전에 시도해보자'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안정적인 삶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기에는, 30대 초반의 가장이었고 대출금이 남은 작은 아파트가 전 재산이었다.


하지만 앰브로스 레드문(Ambrose Redmoon)이 말했듯이,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었다. 나는 믿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할 수도 있다고. 딱 3년만 버텨보자. 후회 없이 부딪혀보고, 안 되면 돌아와 다시 시작하면 된다.


30대 중반의 나는 여전히 젊고, 3년간의 미국 생활 경험은 오히려 플러스가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었다.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할 사람은 아내였다. 나의 오랜 꿈을 알고는 있었지만, 보장 없는 '맨땅에 헤딩'식 이민은 아내에게 너무나 큰 공포였다. 이제 막 돌 지난 딸아이와 함께 낯선 땅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오랜 꿈에 대한 믿음과 "3년 후 실패하면 돌아오겠다"는 나의 간절한 설득에 아내는 결국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의 그 고개 끄덕임은 단순한 동의를 넘어, 나의 무모한 도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을 의미했다.


아내의 동의를 얻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양가 부모님께 이 무모한 결정을 말씀드리는 일, 3년간 버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과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자를 받는 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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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주재원 비자가 무산되면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두 통의 이메일은 내 25년 미국 생활의 시작점이 되었다. 플라톤은 "시작은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했다. 이제부터 그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맨땅에 헤딩하며 살아온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