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용기로 시작된 25년 미국 이민 생활
미국행을 결심한 후, 끓어오르던 희망의 불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일단 부딪혀 보자"는 무모한 용기 뒤에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현실의 문제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중 가장 큰 산은 비자 문제였다. 회사에서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주재원 비자라는 든든한 방패는 사라졌다. 이제 나는 아무런 보장 없이, 오직 개인의 자격으로 미국행을 허락받아야 했다.
30대 중반의 가장이, 2살 갓난아이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가겠다는 계획. 누가 들어도 고개를 갸웃할 만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대사관 영사와의 면담을 앞두고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이 나이에 어학연수라니.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있기는 한가? 너의 상황으로는 불법 체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귓가에는 심장 박동 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인터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 찰나의 시간은 1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영사의 무표정한 얼굴과 날카로운 시선은 나의 모든 불안을 정조준하는 듯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비자가 발급되었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여권을 손에 쥐고 나서야 비로소 얼어붙었던 가슴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앰브로스 레드문(Ambrose Redmoon)은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날의 나는, 나의 꿈이 두려움을 이겨낼 만큼 간절했던 것이다.
비자 해결이 기쁨이었다면, 다음 단계는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맨땅에 헤딩'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자산을 정리해야 했다.
결혼 후 힘겹게 마련했던, 우리 세 식구의 첫 보금자리인 작은 아파트를 내놓았다. 창가에 비치던 딸아이의 웃음소리, 아내와 함께 식탁에 앉아 나누던 소박한 대화들. 그 모든 추억이 깃든 공간을 급매로 팔아야 했기에 손해를 감수해야 했고, 매입 예정자와의 지난한 신경전은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집을 팔고 나니, 우리 가족의 유일한 자산이 사라진 것 같아 허탈함과 함께 깊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집뿐만이 아니었다. 가전제품과 가구,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하나둘씩 낯선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작은 기념품들까지 정리하며, 우리는 지난 삶의 흔적들을 지우고 있었다.
이삿짐센터 트럭이 우리 살림살이를 싣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텅 빈 집 안에 홀로 남았을 때, 나는 마치 내 삶의 한 챕터가 통째로 사라진 것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팔아 현금화했음에도, '이 돈으로 3년간 버틸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은 떨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며 두려움은 더욱 커져갔다.
이 돈마저 다 써버리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모든 것을 걸고 떠나는 이 선택이 과연 옳은 일일까. 수도 없이 자문했지만,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말처럼, 나는 이미 안온한 항구를 떠나기로 결심한 후였다. 더 이상 뒤돌아볼 여유도, 후회할 시간도 없었다.
얼마후 나는 마침내, 이륙을 앞둔 비행기 탑승구 앞에 섰다. 최대한 꾹꾹 눌러 담은 커다란 캐리어 여섯 개가 탑승구 앞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캐리어 하나하나가 마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우리 가족의 덩어리진 불안감처럼 느껴졌다.
내 옆에는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아이를 안은 아내가 미소 짓고 있었다. 귓가에는 이륙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여러 언어로 반복되었고,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우리는 묵묵히 서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와중에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괜찮아, 당신을 믿어'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을 보며, 나는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그녀의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는 뜨거운 다짐을 했다.
Helen Keller가 "혼자서는 우리는 작은 일밖에 할 수 없지만, 함께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이 무모한 여정은 혼자가 아닌 '우리'의 여정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여섯 개의 캐리어와 나의 용기, 그리고 가족의 믿음만이 가진 전부였다.
이제 이륙만 남았다.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창공으로 날아오르면, 우리는 낯선 땅 LA 공항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부터, 나의 진짜 '맨땅에 헤딩' 미국 이민 생활기가 시작될 것이다. 25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그날의 설렘과 두려움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작은 용기와 가족의 믿음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음을 고백하며 다음 이야기를 준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