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사람으로 사는 법
얼마 전 친구와 대화를 했다. 오래된 친구인데 최근 사이가 조금 어색해진 것 같아서 계속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조금 짚이는 일이 있어 그것에 대해 물었는데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내가 너의 친구들이나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보면 단답으로 대답하거나 아예 말을 잘 안 하니까 벽이 느껴져서 나도 서서히 말을 안 하게 되더라."
친한 친구들에게 말을 특별히 친절하거나 다정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내 그런 태도로 인해서 나도 모르는 새 우리 사이에 틈이 생긴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조금 외로웠다. 지난 학기에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친구와 같이 살았다. 친구와는 특별히 부딪치는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중간부터 친구가 남자친구의 강아지를 돌보게 되어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나는 넓은 집을 혼자 쓰다시피 했다. 친구가 집을 비우는 것을 내가 싫어하는 것 같았다고 S는 말했다. 그래서 S는 내 눈치를 보게 되었고, 나와 시간을 보내고자 집에 왔는데 내 말투가 퉁명스러워서 (그렇게 느껴져서) 편하지 않고 더 심심함을 느꼈다.
나는 사실, 집세는 나눠 내는데 넒은 집을 혼자쓰게 됐네! 하면서 꽤나 편하게 느꼈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가끔은 심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친구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S는 그곳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어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힘들어 하고 겉돌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에 대해 친구가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싫었다. 친구는 내 눈치를 보며 그럴 필요 없는데 일부러 집에 들어왔고, 나는 그런 친구의 눈치를 보며 더욱 혼자 잘 지내고 있는 척을 했다. 괜찮아, 네가 내 심적인 문제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 좋겠어 - 그런 마음이었다. 나는 그런 척 하느라 내가 놓친 대화가 무엇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참았던 말들은 아마,
"앞으로 남은 기회가 한 번밖에 없는 것 같아 무서워"
"애들은 다 착하고 좋은데 정신적으로 의지할 하나의 친구를 만들기는 어렵네"
와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지난 학기는 유독 힘든 몇 달이었다. 졸업 시기를 어떻게든 당겨보고자 몰아서 수업을 들으려니 능력 부족과 체력 부족을 동시에 느꼈다. 당연히 학교생활 자체가 힘들고 재미없었다. 이러려고 늦깎이 대학생 됐나 싶어 절망도 많이 했다. 그 와중에 성적 욕심도 버릴 수 없어 악에 받쳐서 공부하느라 거의 이틀에 한 번씩은 혼자 울었다. 그 덕인지 결국 그 학기의 성적은 모두 A.
나는 내가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제대로 해야 되는 성격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것 자체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에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불태우고 식히고 다시 불태우는 과정의 연속이라고만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극한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예민해져있다가도 어느샌가 혼자 해결하고 다시 여유로운 척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잃게 되는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생각하지 못했다기보다는 그냥 이해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후로 친구랑은 잘 화해했다. 화해랄 것도 없이, 서로 추측하고 괜한 배려를 하느라 대화가 부족했던 것을 함께 반성하며 오해를 풀었다. 공부도 잘하고, 노는 것도 포기하지 않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는데 그냥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나는 신경질적인 슈퍼맨보다는 친절한 사람이고 싶다. 적당히 욕심부리고 적당히 여유를 가지고 적당히 비겁하면서 적당히 나약한 사람.
사실 대학원 따위 가지 못해도 나는 어떻게든 잘 살 테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지 못해도 옆에 좋은 사람이 많은데, 나는 언제나 성질머리가 급해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