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볼 용기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에는 일본인 엄마와 영국인 아빠를 둔 혼혈 아이의 관점으로 다양한 사회 문제점을 꼬집는다. 보통 아이의 관점으로 쓰인 책은 순수함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책 속 '아들'은 명문 사립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반 공립 중학교를 가게 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계급갈등, LGBTQ, 인종차별 등 사회의 이면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 생활 속에서 느낀 의문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엄마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
"인종차별이 불법이긴 해. 그런데 가난하거나 불우한 사람을 차별하는 건 합법이라니 이상하잖아. 정말로 그게 올바른 거야?"
"훔치는 건 좋지 않지만, 맘대로 죄인이라 단정하고 다 같이 괴롭히는 게 제일 나쁘지 않나."
"응,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아들'은 생각이 깊고 똑똑하다. 무엇이 불합리한지 알고, 또 엠퍼시(empathy: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친구에게 단호하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고, 그와 동시에 그 때문에 따돌림받는 친구를 보호할 줄도 안다. 잘못된 것을 옳은 방법으로 해결해나가려고 하는 똑똑한 아이이다. 설령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의 입장도 진지하게 고려한 후에 행동한다. 그런 성숙한 아이가 너무 평범하게도 엄마와의 쇼핑은 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딱 사춘기 소년 같은 이런 모습이 '아들'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다. 성적이나 품위 같은 것보다 시티즌십 에듀케이션 citizenship education(시민교육 정치교육, 공민교육), 친구와의 밴드 활동, 그리고 환경문제 시위에 관심을 가지는 책 속 아이들이 결국은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준비된 주자들이다. 나는 오히려 벤치에 앉아 있어야 하는 어쩐지 애매한 선수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선생님들이 우리를 믿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 오전에 수업을 마치면 우리 학교 애들은 대부분 시위에 참가하지 않고 거리에 놀러 나가서 쓸데없는 짓이나 할 테고 괜히 문제라도 일으키면 난처해지니까 수업을 하자고 결정한 거야."
안 봐도 뻔하다는 얼굴로 아들이 말했다.
책의 배경은 현재의 (2019~2020) 영국이다. 아직도 계급이나 인종, 또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에 관한 책이 나온다는 것,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반드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에게는 미국에서 사는 것이 필요 없는 감정 소모를 해야 하는, 하나의 과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외국인이라는 게 티가 나는 악센트를 가졌다는 심리적 불안감,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는 대화, 이웃의 불친절함에 의식하게 되는 나의 인종 등, 겪어내야 하는 것들이 무거웠다. 의연하게 무시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사실은 잠깐 불편하고 말 일이지만,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막연한 책임감이 먼저 들고는 한다. 나 또한 가능한 한, 옐로에 화이트하고 블루 하기보다는 옐로에 화이트 그 자체이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엠퍼시,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볼 용기가 필요하다.
"옐로에 화이트인 아이가 꼭 블루일 필요는 없다. 굳이 색깔로 말해야 한다면 그린이라는, 인종도 계급도 성적 지향도 관계없이 아들에게도 팀에게도 다니엘에게도 올리버에게도 다른 밴드 멤버들에게도 공통되는 아직 미숙한 10대의 색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