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일상의 언어로

리듬으로 번역된 소재

by 무긴이

기업을 브랜딩한다는 것, 특히 대중에게 낯선 B2B 기업의 기술력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일종의 '번역(Translation)' 과정과 같다. 엔지니어의 언어인 '수치'와 '스펙'을 대중의 언어인 '감각'과 '경험'으로 치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효성첨단소재와의 파트너십을 시작하며 마주한 과제도 이와 같았다. 목표는 명확했다. 효성첨단소재를 글로벌 시장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것. 하지만 그들이 다루는 소재는 일반 소비재가 아닌, 산업 현장 깊숙한 곳에 쓰이는 특수 소재들이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아라미드(Aramid)'였다.



강함에 대한 고정관념 비틀기


아라미드는 놀라운 소재다.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5배나 강하고, 500도가 넘는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방탄복이나 소방복, 우주선에 쓰이는 이른바 '슈퍼 섬유'다.

보통 이런 소재를 영상으로 다룰 때면 총알을 막아내거나, 무거운 차를 매달거나, 불을 지르는 실험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직관적이다. 하지만 나는 영상 제작자로서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강인함은 꼭 투박하고 거칠어야만 할까?"


내 눈에 들어온 아라미드의 첫인상은 '강함' 이전에 '유연함'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내구성을 가졌지만, 그 형태는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실(Thread)과 천(Fabric)이다. 이 역설적인 물성이 내게는 연출의 핵심 키(Key)가 되었다.



익숙함과 낯설음의 충돌(Contrast)


소재의 우수성을 나열하는 설명서 같은 영상은 대중의 시선을 붙들지 못한다. 나는 아라미드의 강한 성질과 고유의 노란(Yellow) 컬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가장 대중적이고 가공이 쉬운 소재인 '나무(Wood)'를 파트너로 삼았다. 나무는 딱딱하지만 깎고 다듬기 쉽다. 반면 아라미드는 부드러운 천 같지만 칼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질기고 강하다.


나무: 딱딱하지만 부서지기 쉬움, 친숙함, 자연의 색.

아라미드: 부드럽지만 끊어지지 않음, 낯섬, 강렬한 노란색.


나는 이 두 가지 상반된 물성을 결합해 하나의 오브제를 만드는 과정을 담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온몸의 체중을 싣고 의지해야 하는 '의자(Chair)'다.



노란색의 시각적 리듬


영상은 목공방의 거친 질감 속에서 진행된다. 톱밥이 날리고, 나무가 깎여 나가는 투박한 소음 속에서 아라미드는 고요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연출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아라미드 고유의 '노란색(Yellow)'을 시각화하는 것이었다. 차분한 다크 브라운 톤의 월넛(호두나무) 프레임 위로, 선명한 노란색 아라미드 원사가 엮이고 짜이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강력한 시각적 훅(Hook)이 된다.


나무 프레임이라는 견고한 뼈대 위에, 아라미드라는 유연한 근육을 입히는 과정. 이것은 단순한 가구 제작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 새로운 강함을 만들어내는 은유다.


브랜딩은 가치를 '보이게' 엮는 작업


완성된 의자는 ‘예쁘다’는 말로 끝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관객이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월넛의 묵직한 프레임과 그 위를 가르는 노란색의 리듬,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지는 물성의 대비다. 그 시각적 끌림은 곧바로 질문을 만든다. 왜 이런 조합이어야 하는지, 왜 이 소재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내가 생각하는 브랜딩은 그 질문에 답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우리는 “아라미드는 튼튼합니다” 같은 문장으로 기술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튼튼함이 일상에서 어떤 형태로 작동할 수 있는지, 안전과 내구성이 어떻게 감각의 층위로 번역될 수 있는지를 장면으로 꿰어 보여준다. 강철보다 강한 섬유가 ‘자극적인 시험’이 아니라 ‘일상의 지지’로 드러나는 순간, 기술은 비로소 사람의 언어를 갖는다.


감독으로서 내 역할은 스펙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가진 기술의 핵심을 시선이 머무는 구조로 재배치하는 일이다. 가장 강한 실이 가장 유연한 가구의 일부가 되는 이 역설처럼, 좋은 브랜딩 필름은 낯선 기술을 친숙한 경험 속에 걸어두고,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다. 이것이 아라미드를 통해 내가 전하고 싶었던 방식이다.



►아라미드 나무 의자 콘텐츠 URL: https://youtu.be/8mh86dGS5iU?si=yUyIJ67C6RtGJ0X7



►전체 포트폴리오 보기: https://rhoakt.myportfolio.com/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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