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Jan 10. 2020

직장인 여행자-(1)혼자 하노이에 가게 된 이유

직장인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3일의 휴가

“권실장 XX새끼”


전화를 받자 마자 네가 내게 했던 말이다. 이 말을 시작으로, 넌 우리가 함께 계획한 휴가를 떠날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3개월 전부터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고, 호텔을 예약했다. 수 많은 맛집 리스트를 정리하고,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는 카페의 정확한 위치도 파악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도 일찌감치 휴가계획을 알리며,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휴가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함께 떠날 완벽한 휴가가 채 1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문제가 발생했다.


네가 속해 있는 부서에 촉박한 일정의 업무가 들어왔고, 실장은 그 일을 너의 팀에게 떠넘겼다. 분명 휴가가 예정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 새끼한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최종 제출까지 딱 보름의 시간이 남은 신규 마케팅 제안서 작성. 넌 앞으로 보름간 매일 야근을 해도 겨우 끝낼까 말까 한 촉박한 스케줄이라고 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함께 계획했던 4박 5일의 하노이 여행이 무산됐다.



고작 5일의 시간이었다. 주말을 빼면 겨우 3일의 휴가였다. 1년의 수 많은 날 중, 겨우 3일을 빼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고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평소 주말도 없이 개처럼 늦게까지 일할 땐 아무런 제제도 하지 않았으면서, 휴가에는 왜 이리 인색할까? 처량한 현실에 화가 나고, 다시 한번 사회에 환멸을 느낀다. 사회 속 사람들은 자기 생각밖에 할 줄 모른다.


처음으로 함께 하기로 한 해외여행이었는데, 처음이 어렵다는 말은 얄밉게도 본인이 옮음을 철저하게 증명해내고 있다. 혼자 여행을 떠났던 적은 많았기에, 혼자 하는 여행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혼자 떠나기로 계획한 것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혼자가 되어버린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전혀 너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알지만, 괜히 너에게도 심통이 났다.


내 기분을 알아챈 넌 미안해하며, 혼자라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일하는 너를 두고 나 혼자 어떡해 가냐며 거절해야 했지만, 이기적이게도 난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네가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휴가를 쓰겠다고 말하기 위해 봤던 과장, 팀장의 눈치와 인수인계 과정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미안함.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얻어낸 3일의 휴가를 버릴 수 없었어.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너에게 짜증을 내고, 이 지긋지긋한 한국 사회를 비난하며 휴가를 낭비했겠지.

마지못해 등 떠밀려 가는 척했지만, 분명 넌 혼자라도 가고 싶다고 생각한 내 마음을 읽었기 때문에 혼자라도 다녀오란 말을 한 거였겠지.



만약 너였다면 어땠을까?

너도 나처럼 혼자라도 떠났을까?

만약 네가 혼자 떠났으면 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시작부터 머릿속이 복잡한 이 여행이 즐거울지, 혼자 떠나기로 한 결정을 내린 게 잘한 건지도 모르겠어. 넌 미안해하지 말라고, 오히려 같이 떠나지 못해 본인이 더 미안하다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오라고 말했지만,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어.


네게 미안한 마음과 네게 부렸던 심통이 떠오르며 더 미안해졌어. 분명 나보다 더 속상했을 텐데, 그것도 모르고 내가 증오하는 사회 속 사람들처럼 내 생각만 한 거 같아. 수 많은 생각과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 시작이 이렇게 즐겁지 않은 여행은 처음이야.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어, 이어폰 속 노래를 크게 튼 채 눈을 감았어.

내 기분이 어쨌든 이 버스는 일하는 너를 두고 인천공항을 향해 달리고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