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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an 10. 2020

직장인 여행자-(2)하노이로 향하는 비행기

잠 못 이루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

항공기 기내 방송이 너무 커서 잠에서 깨버렸어.


귀마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확성기를 틀어 둔 것처럼 소리가 아주 쩌렁쩌렁해. 만약 네가 직접 들었으면 분명 공감했을 거야.

이 방송을 듣고도 옆자리 남자는 코까지 골면서 푹 자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도 푹 잘 수 있는 이 사람이 진심으로 부러워.


그리고 아까는 난기류를 만나서 기체가 위아래로 엄청 흔들렸어. 안전벨트를 하라는 안내방송도 나왔는데, 그 순간 비행기 사고에서 안전벨트가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더라.

그래도 난 살기 위해 안전벨트를 했지. 평소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막상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무서웠어.

실제 다가온 죽음의 느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걸 보니, 난 아직 살만한가 봐.



아침 11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아직도 하노이를 항해 나아가고 있어. 아직 2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더 이상은 잠도 안 오고 다리가 너무 아파. 빨리 하노이에 도착했으면 좋겠어.

같이 비행기를 탔다면 이렇게까지 이 시간이 지루하진 않았을 텐데.


비엣젯 항공은 항공권이 저렴한 만큼, 기내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도 거의 없어. 좌석 앞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건 물론, 물 한잔도 그냥 주지 않아. 의자 사이의 간격도 상당히 좁아서, 옆에 남자는 거의 구겨진 채 앉아있어.

그래도 채 30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티켓을 구매했으니, 이런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해야지.



몸이 불편한 건 견딜 수 있지만, 마음속에 자리잡은 불안감은 자꾸 날 초조하게 만들어. 하고 있는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오지 못해 마음이 불편해. 내가 알아볼 수 있게 만든 그 파일들을 다른 팀원들도 알아볼 수 있을까, 광고 라이브 일정에 맞춰 원활한 예산 편성을 할 수 있을까 등등.


분명 일을 하다 보면 모르는 부분이 생길 것이고, 직접 찾아보고 해결하길 귀찮아하는 박 과장은 내게 연락을 하겠지.

물론 걱정이 무색한 만큼, 내가 없어도 업무에 조금의 지장이 없을 수도 있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별일이 터지지 않았으면. 그래서 이곳까지 가져온 회사 노트북을 열어볼 일이 없었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잠깐 떠난 휴가에서 회사 일을 완전히 잊기란 불가능한 거 같아.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묶여 있어.

비행기 안에서도 시계를 보면, 지금쯤 그 광고가 잘 라이브 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돼.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없는 비행기 안이 너무 답답해.



불안함을 한 가득 안고 있지만, 이 시간만큼은 일 걱정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고 있어.


'회사 생각은 하지 말자. 메일함을 열어보지도 않을 거야. 이미 광고주에게도 1달전부터 휴가를 떠날 거라고 말했기 때문에 만약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해도 받지 않을 거야. 잠시만이라도 온전히 내 시간에만 집중한 순간들을 보내자. 그 동안 많이 고생한 만큼, 난 충분히 그 자유를 누릴 가격이 있어.'



이 다짐들이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난 잘 다녀올 거야.

너와 함께 떠나지 못한 여행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네게 들려 줄게. 넌 그곳에서 너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어.

그리고 몇 일 뒤에 다시 만나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이제 난 다시 잠을 자도록 노력해야겠어. 아직 남은 2시간의 비행을 견디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는 없을 거 같아. 점심 잘 챙겨먹고. 하노이에 도착하면 연락할게 지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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