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엔 모든 것이 조금 덜 아름다워 보인다. 다낭, 호이안에 가려고 날씨를 보니 흐리고 비란다. 육로이동을 우선순위에 두었지만 바다는 덥고 해가 쨍할 때 가야 제 맛이다. 동남아에 왔는데 아직도 바다수영을 못했다. 다음 목적지를 푸꾸옥으로 변경했다. 철새들처럼 따뜻한 곳을 찾아 하노이에서 푸꾸옥으로 날아갔다.
푸꾸옥에는 바다도 있지만 여러 비건 식당이 있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다. 비건 식당들이랑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큰 도로에서 좁은 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나타나는 리조트는 작은 비밀의 정원 같았다. 도로만 건너면 바로 비치 바가 있는 모래사장도 있다. 화장실 한쪽 천장이 뚫려있어 빛도 바람도 드나드는데 방충망으로 막혀있어 모기는 못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잤다. 숙소가 맘에 안 들면 다른 숙소로 가려고 삼일만 예약했다가 2주나 있었다.
Miana Resort Phu Quoc,
Đường Trần Hưng Đạo, Khu 1, tt. Dương Đông, Phu Quoc, Kien Giang, Vietnam
도착한 첫날 저녁엔 야시장 근처의 비건 식당에 갔다.
Nhà Hàng Chay NẤM (Vegetarian Restaurant), 13 Đường Nguyễn Trãi, TT. Dương Đông, Phú Quốc, Kiên Giang, Vietnam
인테리어도 메뉴도 예뻤다. 맛있는데 가격에 비해 양이 조금 적다고 생각했다. 월남쌈이랑 같이 나온 비건 피시소스가 너무 비렸다. 맛을 알고는 손도 안 대고 월남쌈만 먹었는데도 이상하게 너무 비렸다. 직원한테 뭐가 들어가기에 비린 거냐고 물었지만 언어장벽으로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저 다 비건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숙소에서 가깝고 맛있고 예뻐서 나중에 우연히 같은 시기에 푸꾸옥에 온 논비건 친구들과 같이 가기도 했는데 다들 맛있다고 했다.
야시장을 구경했다. 말로만 듣던 과육이 두툼한 코코넛과 듣도 보도 못한 알맹이가 들어있는 모양새의 코코넛도 보였다. (둘 다 사 먹어봤지만 코코넛 워터 코코넛이 제일 맛있다.)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을 걷는데 땅콩팔이들이 거의 다섯 걸음마다 몇 명씩 있어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웃긴 건 그들이 내가 한국인인걸 어떻게 알아봤는지 안녕하세요~ 땅콩 이러면서 말을 걸었다. 푸꾸옥은 한국 직항이 있어서 한국인들이 많이 온단다. 이곳저곳에 한국인들과 한국어가 많이 보인다.
숙소와 야시장 사이에 작은 비건 식당이 있는데 들어가면 소소하게 준비된 몇 가지 음식과 밥 혹은 국수를 먹을 수 있다. 가격은 저렴하고 세상에 비건 피시소스로 직접 담은 꽤 괜찮은 비건 김치가 있었다. 아쉽게도 음식 맛은 그저 그래서 한번 가고 말았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비건 뷔페는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 임시휴업 중이었다.
숙소 앞 해변에서 남쪽으로 쭉 걸어가면 모래사장이 끊기는 곳 가까이 있는 채식식당은 바닷가 근처 식당에 가고 싶을 때 자주 갔다.
San May,
126A Đường Trần Hưng Đạo, Dương Tơ, Phú Quốc, Kiên Giang 92500, Vietnam
여기도 남 식당처럼 인테리어도 예쁘고 음식도 다양하고 맛있는데 코코넛향이 은은한 아이스티를 기본으로 제공하고 계속 리필해 준다. 특히 맛있는 샐러드 종류가 많고 같이 주는 크래커가 바삭바삭하다. 젖이나 알을 사용하는 메뉴가 있다. 현지인들은 샤브샤브같은 핫팟을 먹으러 오는 듯.
한 번은 버섯 탕요리에 함께 나온 채소를 먹다가 어떤 풀이 너무 비려서 깜짝 놀랐다. 이건 뭐지? 직원을 불러서 이 풀의 이름을 물었고 직원은 베트남어로 알려주었다. 구글에 검색했더니 영어로는 fish mint. 한국어로는 어성초. 축축한 땅에서 자라는 풀인데 몸에 좋은 약초란다. 처음 갔던 비건 식당에서 먹은 월남쌈에 이게 들어있었구나. 비린내가 너무 심해서 더 먹지는 않고 뜯어서 냄새를 맡는데 너무 이상하고 신기했다. 자연은 이미 육식 대체제를 다 만들어놓았다.
삼십 분 넘게 걸어서 찾아갈 정도로 맛있는 비건 식당.
Nhà hàng Chay Minh Tâm,
245 Đ. 30 Tháng 4, khu phố 1, Phú Quốc, Kiên Giang 920000, Vietnam
튀긴 순두부를 짭조름한 소스에 조린 두부후추간장 요리가 맛있다. 소스가 특히 맛있어서 갈 때마다 먹었다. 마늘 공심채 볶음을 시키면 튀긴 통마늘이 들어있다. 밥 큰 대접, 요리 세 가지 주문해서 먹었다. 주문한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다.
오토바이를 빌려서 캠비치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산마이 근처에 있는 비건 카페에 들른 적이 있는데 어디서 본 화면이 있었다. 러빙헛? 갑자기 궁금해져서 찾아보니까 칭하이 무상사가 베트남 사람이었다. 그 종교가 사이비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몰라서 찾아봤더니 세계평화를 원하고 명상을 가르치며 비건 식사를 하고 비건 식당을 영업한단다. 자신을 신격화하는 건 당황스럽지만 누구를 괴롭히지는 않는 것 같고, 칭하이 무상사가 부자인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른다고 나오는 걸 보니 돈을 뜯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동물과 자연환경을 위하며 비건 식당을 운영하는 사이비라니. 이런 종교라면 흥해도 좋겠다 싶었다.
대망의 비건 하우스.
Khánh Ly Vegetarian Restaurant,
35 Đường Nguyễn Trãi, TT. Dương Đông, Phú Quốc, Kiên Giang, Vietnam
야시장 안쪽에 있는 러빙헛 비건 식당. 후기를 보니 너무 맛있고 좋다와 외국인이라 바가지를 썼다는 등 호불호가 갈리는 내용이 많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으로 쌀국수를 먹기 때문에 아침식사 메뉴에 국수가 있다. 아점으로 국수를 먹으려고 갔는데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보고 홀린 듯 밥접시를 받았다.
두부토마토! 베트남에서 두부토마토는 너무 흔한 음식이라 그런가 비건 식당에서 두부토마토는 찾기가 어렵다. 바나나 꽃 튀김이랑 대체육 튀김에 채소볶음과 샐러드를 집었다. 여기는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접시에 담는다. 그러면 내가 담은 음식의 종류와 양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아마 그래서 외국인들이 엄청 많이 담아놓고 적게 담은 베트남사람과 가격만 비교하고 불만을 토로한 것 같다.
식당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천장이 높아 답답하지 않다.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 오는 듯하다. 한 번은 바쁜 시간대에 갔더니 가게 앞에 오토바이가 빽빽하게 있었고 식당 안에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대부분 밥이랑 반찬을 포장해가지만 앉아서 식사하는 사람들도 많아 자리가 없었다. 그 장면을 밖에서 구경하면서 기다리다가 한숨 여유가 생겼을 때 들어갔다.
처음 이 식당에 다녀온 이후 메뉴에 있는 모든 국수를 맛보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아침마다 국수를 먹으러 갔다. 베트남어는 알파벳이라 성조는 망해도 대충 뭐가 뭔지 읽을 수는 있다. 내가 벽에 붙은 메뉴 사진을 찍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국수를 주문하면 사장님이 소리 내 읽으며 주문을 받았다. 사장님과 친해져서 우리가 가면 사장님이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셨다. 국수는 한 그릇에 25-30k동(약 1500원)인데 채소, 면, 국물, 대체육에 튀긴 완탕까지 올려준다.
숙소와 가까웠지만 그래도 꽤 걸어야 했기에 아침에 가서 국수를 먹고 밥과 반찬을 포장해 바다에 다녀와 숙소에서 점심으로 먹은 날도 많았다. 베트남 슈퍼에서 달지 않은 비건 두유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인데 여기에서 그걸 판다. 두유를 먹으려고 얼음 컵을 달라고 했더니 큰 숟갈 수북이 설탕을 넣으려고 했던 걸 다행히 막았다. 낯선 곳에서 매일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얼굴들이 생기는 건 즐거운 일이다. 맛있고 저렴한 음식이 있다는 것도. 한 가지만 빼고 메뉴의 국수를 다 먹어본 결과 가장 맛있는 건 역시 Pho. 또 가고 싶다. 보고 싶은 사장님. 그리운 쌀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