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라는 꽃
매일을 마주하다가도
문득 떠올려 보면
무수히 많은 비유가 떠오르는 대상이
나에게는 남편이다.
그를 ‘남편’이라 칭하는 데에서 오는
왠지 모를 이질감이 이제는 좋다.
‘남편’이라는 말 안에는
그날그날 나의 감정에 따라
‘불안함’으로 다가올 때도 있고
‘안도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싸우거나 기분 나쁜 날이라고 해서
‘그’라는 존재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며,
사이가 좋은 날이라고 해서
그가 나를 안도에 이루게 하는 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
복잡하다면 복잡한 감정의 흐름,
나만큼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유부녀들이라면
모두가 공감을 하는지가 또 궁금해진다.
하지만 결코 묻지 않는다.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같은 어휘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얼굴 마주할 시간조차 너무나도 촉박한 우리에게는
사치로울 수 있는 주제이다.
늘 해사롭기만 할 것 같은 그의 모습을
더는 부정하거나 의심할 가치가 없다
여겼기에 결혼을 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는
꽃이 왜 꽃이며
열매가 왜 열매인지
피부로 느껴본 적 있던가 싶을 정도로
우리는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와 준 기쁨을
숫자로 표현해도 0.0001%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다 싶을 정도로
우린 비언어로 통하는 감정이
대다수 일치하는 부부로 성장했다.
“결혼하고 3년은 아이 낳자고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 “
는 것이 나의 결혼 전 유일한 요구사항이었고,
남편은 그 말을 신경 쓰지 않는 듯 지내왔지만
그 약속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결혼하자마자 아기 낳을걸!
하는 나에게 그때 낳았으면 다른 아기를 만났겠지!
라며 늘 나의 지난 시절 과민했던 선택들을
현명했다며 치켜세워주는 그
목이 마르고 해가 부족해 웃자라고 말라가는 선인장처럼
언제나 물이 가득 차 튼튼할 것 같은 그도
사랑받지 못할 때의 모습을 난 기억 한다.
잊지 않으려고 글을 적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