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보호 속에서는 결코 가르칠 수 없는 것
나는 아이에게 딱 한 가지만 알려줄 수 있다면,
‘경이로움’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기꺼이 최선을 다해 곁에 있고 싶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확신하게 되는 사실이 있다.
좋은 환경, 좋은 말, 좋은 것들만으로는
아이의 마음 안에 경이로움이 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뜻밖의 결핍, 속상한 마음,
넘어졌던 기억, 미움받았던 감정.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감정들,
말하자면 ‘미완의 퍼즐조각’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더 많은 경이로움이 자라난다.
아이는 그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
세상을 스스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감정의 작은 파도를 지나간다.
그 과정에서 문득,
‘아, 이게 세상이구나’ 하고 놀라워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그 경험을 함께 걸어줄 수는 있지만,
내가 없을 때야말로
아이는 더욱 경이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만난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를 ‘지켜주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아이의 경이로움이 피어나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부모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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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의 직관에서 시작되었지만,
아동심리학에서 말하는 ‘완벽한 보호’가 아닌
‘충분히 좋은 부모’의 개념과도 닿아 있다.
아이가 적당한 좌절과 불완전함을 겪으며,
자기 내면을 탐색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하는 것.
그것이 결국, 경이로움을 품을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