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오후 1시 40분쯤으로 기억한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옆구리에서 뭔가 투둑하면서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따뜻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급히 화장실로 갔다. 물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직감했다.
'양수가 터졌구나!'
첫 아이 때는 조기진통이 찾아와 출산을 했는데, 이번에는 양수가 터지다니! 급히 병원에 연락하고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은 양수가 맞고 자궁문도 열려 있으니 24시간 안에 아기를 낳는 것을 목표로 유도분만을 하자고 말했다.촉진제 투여 후, 하염없이 걸었다. 1시간 뒤 진통이 찾아왔고, 무통주사를 맞았다.
분만 진행속도가 느린 편은 아니었으나태아의 심박수가 고르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아기에게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계속 심호흡을 하라고 하셨고, 나는 숫자를 세며 열심히 숨을 쉬었다. 아기를 대신해서 숨을 쉬기라도 하는 것처럼...
동행한 친정어머니는 규정상 분만실에 들어올 수 없었고, 주말부부로 지내던 남편은 차로 4시간 거리에서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덩그러니 혼자 분만실에 누워 있는데, 무통주사로 잠시 눌렀던 진통이 점점 심해졌다.'경험해 본 공포심'에 압도되려는 찰나, 나는 어느새 눈에 보이지도 않는 뱃속 아기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가야, 힘들지? 조금만 있으면 엄마 만날 수 있어. 엄마도 힘낼게.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그 방 안에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기 또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러했듯이, 아기도 나를 의지하고 있었을까?
진통이 세지면서 영겁과도 같은 힘주기의 시간이 찾아왔다. 숨을 참고 힘을 주다 잠시 의식을 놓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간호사 선생님들의 격려를 받으며 계속 힘을 주었다. 더 이상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고 느껴질 무렵, 구원자와 같은 의사 선생님의 등장과 함께 분만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저녁 7시 3분, 드디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 다행이다! 숨을 쉬는구나. 맥이 탁 풀리는 동시에 뜨끈한 무언가가 내 가슴팍에 얹혔다.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서로를 의지했던 두 사람이, 드디어 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이었다.
임신기간 동안 유리 계단을 밟는 마음으로 조심했다.
( ) 36주 5일이 되는 날, 양수가 터져 아이를 낳았다.
() 안에 어떤 접속사를 넣을지 고민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써야 할지, '그 덕분에'라고 써야 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넣는다면, 그건 나의 개인적인 아쉬움일 것이다. 첫 아이 때 조산기로 누워 버티고 버티다 36주 3일에 출산했던지라, 둘째는좀 더 오래 품어서 건강하게 세상에 내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그 덕분에'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 다낭성으로 인한 배란장애와 조산기 등에 대처하는 현대의학의 수혜를 받을 수 있었고, 남편과 아이와 친정식구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지원과 응원을 받았으며, 아이가 비록 2510g의 작은 몸이지만 태어난 순간 힘차게 울음을 터뜨려주었다.
그래서 다 괜찮다. 아이가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왔고 나도 멀쩡히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아, 물론 몸이 좀 삐그덕거리긴 하지만...
첫 아이를 임신하며 '아이를 지키는 일'이 결코 나의 의지로만 되지 않음을 알았고, 그래서 둘째를 품는 동안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아이의 이름은 남편의 성, 내 이름의 중간 글자, 첫 아이 이름의 마지막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가족의 새로운 팀원에게 부여하는 아이 아빠의 선물이다.
이전에 아이를 나의 세계에 떨어지는 운석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 지금 나는 일주일 전 착륙한 이 미지의 존재를 관찰하는 중이다.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지만, 아무래도 이 작은 아이를 나는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