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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석훈 Aug 14. 2016

혼자가 아닌 석양, 자다르

네 번째 도시, 자다르

혼자 떠났기에 하고 싶은걸 다 할 수도 있었고 또 자유롭게 돌아다녔지만, 한편으론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마을에 들릴 때마다 그곳에 사는 친구와 친해지지만, 그 인연은 거기서 끝이었다. 자그레브 호스텔의 룸메이트, 배네 치아의 음악가, 라박의 술집 아르바이트생, 또 플리트비체에서 나를 태워준 공원 직원까지... 그들은 나의 하루를 더 알차게 만들어 주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플리트비체를 떠나서 다음 도시인 자다르로 향했다. 큰 기대도 없었고, 짧게 머무는 도시이기에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먹구름이 적적한 자다르

자다르에는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고, 나는 숙소로 가기 전에 마트에 들렸다. 몸은 다 젖어있었고 더 이상 마른 옷도 없었기에 식당에 가는 대신 장을 봐서 숙소에서 밥을 해 먹기로 했다. 크로아티아 마트 <KONZUM>에들려 구경을 하다 보니 정육 코너에서 삼겹살을 팔고 있었다. 삼겹살과 맥주 1L 한 병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주인아저씨는 키가 적어도 2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구였다. 내가 다 젖은 채로 들어오자 아저씨는 걱정을 하며 선뜻 자기 옷을 빌려주었다. 젖은 옷들을 다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나한테는 맞지도 않는 2미터 아저씨의 옷을 입고 혼자 삼겹살을 구웠다. 

해에게 건네 인사

혼자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한 후 자다르의 명물, <해에게 건네는 인사>와 <바다 오르간>을 보러 자다르 구시가지로 향했다. 바다를 따라 걷다 보니 성벽 도보이고 오래된 성당도 보였다. 그리고 땅의 끝에 갔을 때, 오르간 소리가 들리면서 <해에게 건네는 인사>가 보였다. 석양이 유명한 자다르이기에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모여있지 않았다. 혼자서 사진도 찍고 오르간 소리 녹음도 하면서 해가 지기를 기다려보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역시나 유명한 관광지답게 관광버스에서는 단체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내렸다. 시끄럽게 단 체 관광객들이 다녀간 후에는 또 다른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중에는 시끄럽게 관광객들에게 말을 걸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저 멀리 나의 <Naruto People>들이 보인다.

그들은 Go Pro 카메라를 들고 보이는 관광객들에게 다가가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혼자 앉아있는데 역시나 그들은 내게도 다가왔다. 본인들을 러시아 블로거라고 소개하던 그들은 지금 여행 블로그를 하고 있는데 나에게 같이 영상을 찍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그게 재미있어 보이던 나는 흔쾌히 함께 영상을 찍어줬다. 동양인이 영어를 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지 내가 영어를 유창한 영어로 얘기하자 신기해했고 우리는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애기를 들어보니 사실 그들은 러시아인이 아니었고, 블로거도 아니었다. 그들은 폴란드에서 히치하이킹으로 자다르까지 여행 온 여행자였으며 또 한 명은 반려견과 함께 여행을 하는 크로아티아인이었다.  폴란드인 중 한 명의 이름은 유스타치였는데 그는 나를 나루토라고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Naruto People>이 됐으며 나는 석양을 보는 걸 포기하고 그들과 맥주를 마시러 떠났다. 

맥주를 마시러 가던길에 저물던 석양, 내 생의 최고의 석양이였다.

바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크로아티아인 친구가 갑자기 일을 해야 한다며 전화를 붙잡고 씨름을 하더니 기어코 바에 앉아서 노트북을 켰다. 나머지 일행들은 그냥 본인들 숙소인 캠핑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유스타치는 나에게 같이 가서 캠핑을 하자했지만, 나는 짐들도 다숙소에 있었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른 곳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뒤로 남긴 채 거절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유스타치와 같이 갔다면 어땠을지 싶다. 다음날 일정을 포기하고 하루, 아니 몇 시간만 더 있었다면 재미있게 놀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짧았던 <Naruto People>은 해산됐다. 

자다르는 야경도 아름답다

나는 바에 남아 일하는 크로아티아 친구와 맥주를 마셨다. 그 친구의 이름은 젤레나,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젤레나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해는 지고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젤레나는 스플리트 출신이었는데 내가 다음날 스플리트로 간다고 하니 내일도 보자며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나는 <해에게 건네는 인사>에서 석양을 못 본 게 아쉬워서 다시 그리로 향했다. 밤이 오니 <해에게 건네는 인사>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그위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자다르에서는 뜻밖에 친구를 만들었다. 석양을 보지 못했어도 유스타치, 젤레나 그리도 나머지 친구들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Naruto People>은 나에게 자라드를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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