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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 Mar 01. 2021

내 행복은 어떤 방향일까

한정원의 『시와 산책』을 읽고

평일을 지루할 틈 없이 잘 달리고 금요일 밤으로 접어들며 설레는 것

토요일 아침 일찍 눈을 뜨고 밥을 먹으며 어떻게 주말을 보낼지 찬찬히 생각하는 것

책 읽다가 꾸벅꾸벅 졸고, 그러다 잠시 깨서 정신없이 이불속으로 들어가 다시 잘 수 있는 것


요즘 나의 행복은 이런 것이다.


하루종이 비가 오는 연휴 마지막 날 내게 온 행복은 감각적인 것이었다.


청각 - 음악 소리를 평소보다 작게 두 칸 정도로 틀었더니 눈 앞에 있는 것에 집중이 잘 되면서도, 간간히 친근한 노래가 나오면 잠시 반갑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각 - 따뜻한 빛이 좋아 형광등보다 자주 켜놓는 스탠드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 눈이 부셨는데, 위치를 바꿔서 등 뒤에 놓으니 한 톨의 빛도 부정하지 않게 되었다.

후각 - 동네 공방에서 큰 고민 없이 산 디퓨저를 방 한켠에 두었더니, 교보문고에서 맡았던 기분 좋은 나무 냄새가 감돌아서 책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촉각 - 한 달 반 전에 주문한 안락의자를 거의 포기하고 있던 즈음에 문득 도착했는데, 너무나 착 감기고 편안해서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서 오래 기다린 보람을 느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이러한 것들도 결국 디퓨저의 향기처럼 다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그 향기는 돈으로 구매한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좀 시무룩 해질 뻔했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p.34

"사랑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이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동서문화사(2011)

이것은 사랑에 관한 기록이지만, 나는 '사랑'의 자리에 '행복'을 넣어 다시 읽는다.
행복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니다.

매 순간 '방향'을 선택한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방향이 아니라, 앞에 펼쳐진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선한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른다. 그 둘은 처음에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내 행복은 선에 속할 것이다.


난 저 방향이 '태도'라고 느꼈다.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나의 태도.


난 그 태도가 바로

삶이라는 것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 내 마음을 잘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지금은.


인간은 고통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고, 행복이 있기에 고통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과 고통은 서로의 이유이고 결과인 셈이다.


금요일 저녁부터 설레는 것,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만끽하는 행복, 감각을 활짝 열어 평화로운 오후를 즐기는 것은 모두 정신없이 달린 평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평일이 꽤 바빴고, 알찼고, 정신없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난 요즘 그 평일마저도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 행복을 위한 시간으로써 일주일 중 5일을 보내고 있지 않다. 감사하게도 좋아하는 일, 내게 맞는 일을 하고 있다. 설사 이렇게 생각했던 순간이 어리석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지라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왜냐면 고통이 행복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행복과 고통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구분보다는 그 순간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 더 값질 것이다. 


이런 무형한 것에 대한 생각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좋은 태도'이다. 좋은 태도는 손에 잡히는 유용한 무언가는 아니지만,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위 글에서 작가님은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선한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르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즐거운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르기로 했다. 

이 둘은 처음에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내 행복은 즐거움에 속할 것이다.


좋은 글을 만나 삶에 대해 생각하고 내 마음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서,

점차 내 삶이 더 좋은 향기로 가득 차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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