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리스본에 갈거야

여행의 시작에 대한 고찰

by 서경



여행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
비행기 티켓을 끊는 순간부터? 짐을 싸는 순간부터?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사람마다 여행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르고, 저마다 여행의 시작점이 다를 테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만큼, 여행이란 그 여행지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포르투갈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마냥 리스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였을까? 분명한 건 그 이유 중 하나가 에그타르트라는 것이다. 마카오에 갔을 때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를 맛보고 나서 현지에 가서 꼭 질리도록 먹어봐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그게 2015년도 일이니까 벌써 5년여 전. 난 그 이후부터 조금씩 포르투갈을 꿈꿔왔다.


그리고 회사 동기 언니 덕분에 포르투라는 곳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끝이라는 곳이 있다는데, 가보고 싶어졌다. 해리포터의 영감을 받았다던 서점도, 와이너리 투어를 할 수 있는 곳도 (놀랍게도 포르투갈을 그리며 나이를 먹어갔고, 어느덧 와인을 좋아하게 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가보고 싶었다. 물론 에그타르트는 1일 1개 이상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틈틈이 SNS에서 포르투갈 여행정보를 발견하는 대로 저장해두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치여, 기억해야 할 정보들이 너무 많아 나의 여행지는 잊혀있었다. 잠시 저 구석에. 그사이 분명 나는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왔지만 정작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도시들은 뒷전으로 해둔 채 새롭게 내 머릿속을 채운 도시들을 다녀왔다.


그러던 와중 일기장에서 나의 기나긴 집착의 도시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2018년부터 5년짜리 Q&A 형식의 일기장을 쓰고 있는데, 2018년 1월 13일과 2019년 1월 13일이 대답이 똑같은 것이다. 1월 13일에 주어진 질문은 바로 "다음에 여행하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였다. 나는 이곳저곳 고민 중이지만,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가보고 싶다.라고 적었다. 소름 끼치도록 똑같이. 이 정도로 집착했으면 가줘야 한다, 올해는 꼭 가자.라고 연초부터 스스로 되뇌었다. '올해 내가 언제 휴가를 쓰게 될지,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게 된다면 그곳은 포르투갈로 하자고.'


그리고 언제나처럼 비행기 티켓을 끊는 순간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특가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포르투갈을 떠올리면서 내 뇌의 지분을 포르투갈이 점차 갉아먹으며 자신의 자리를 넓혀갈 때 즈음, 비행기 티켓을 슬슬 찾아보기 시작했고 제법 만족스러운 가격에 3달 뒤 리스본행 비행기 표를 결제했다. 그게 벌써 작년 이야기.


그래, 여행은 그 여행지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정말이다. 여행지를 정한 순간부터 집에 붙어있는 마그넷들을 보다가도 '포르투갈에 가면 마그넷은 몇 개 정도 사 올까?'를 생각하고, 벽에 걸려있는 세계지도를 보며 '리스본이랑 포르투는 어디 있지?'를 찾아보게 되고(물론 알고 있지만 세계지도에서 보는 건 또 느낌이 다르다구!), 책을 읽다가도 포르투갈과 관련된 글귀나 책이나 작가가 등장하게 되면 세상 반가울 수 없었다. 벌써 여행을 다녀온 사람처럼 티켓을 끊은 순간부터 여행을 떠나는 순간까지 설렜다.


사실 이런 마음의 기저에는 조금 두려운 마음도 깔려있었다. 재작년 런던의 경우는 '언젠가는 갈 테지만 당장은 아닐걸?'이라는 마음으로 대했던 도시였기에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때문에 긴 여행에서 정말 만족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포르투갈은 너무 오랫동안 '언젠가 갈 수 있다면 빨리 가야지'라는 마음을 갖고 있던 나라이기에 기대가 큰 만큼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여행도 하나의 숙제처럼 다가오는 나의 고질적인 버릇이 튀어나오려 해서 여행 준비를 하는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조금 내려두고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나'에게 더욱 집중하고 '나'랑 잘 노는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 어딜 가든 '나'랑 함께면 뭐가 문제겠나! 라고 생각을 바꾸니 개운해진것. 분명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있는, 일종의 '다이어리에 적을 만한 것들'을 찾아낼수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이런 마음을 지니고 다녀온 포르투갈 여행은 역시나 내 여행 답게 에피소드 투성이였다. 이런 나의 여행스타일을 보고 런던에서 나의 에어비앤비 호스트였던 wills는 웃으며 말했다. '너 다이어리에 적으려고 비행기 놓친 건 아니지?' 당시에 사실 우리 둘은 패닉이었지만 돌이켜보면 wills의 말이 맞았다. 어쩌면 나는 그런 에피소드들을 모으며 살아가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잘하는 여행도 못하는 여행도 없다는 걸 역시 여행을 다니며 깨달았다. 그리고 겸사겸사 삶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것 또한 배우게 되었다. 여행은 떠나 있는 시간만이 여행이 아닌 것이다. 떠나기 전, 떠난 시간, 돌아온 후까지 여행은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포르투갈을 향한 나의 여행은 5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