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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Dec 02. 2022

커튼 너머

  커튼.

  방수 재질의 얇고 무늬가 군데군데 흐릿한 걸로 보아 구매한 지 오래된 낡은 커튼은, 대량 구매로 더욱 저렴했을 커튼은 핏자국이 그대로 멍처럼 남은 채 공용 공간을 아슬아슬하게 사적 공간으로 나누는데 큰 몫을 하고 있었다.

  나의 침대와 옆 침대의 사이는 60센티 정도의 거리와 앞서 설명한 커튼 한 장이 다였다.


  몇 달 전.

  건강검진 서류가 도착했다. 

  맨 앞에는 긴급이라는 두근거리는 단어와 함께 산부인과라고 되어 있었다.

  유방과 자궁이 기능을 다하고 필요성마저 없어졌을 때 발견되기 시작하는 결함들은 짜증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효용도가 떨어지면 자연도태되는 방법은 없는 걸까. 더 이상 기능조차 할 수 없는 기관은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고 그 파장은 정신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어렵게 대학병원을 예약했고

  짧게 의사를 만났고

  한참 뒤에야 수술을 잡았다.


 <자궁경 수술의 권위자> 기사가 벽에 걸려 있었다. 마스크 때문에 하관을 볼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이 좋았다. 의사는 자궁경으로 수술할 예정이며 전신마취를 할 거라고 했다. 스케줄은 나가서 잡으면 된다고 했다. 질문이 있냐고 물었다. 뭔가를 물어야 할 것 같았지만 딱히 뭘 물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만약 한다면 뭔가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을 하고 싶었으나 아는 것도, 생각나는 것도, 무엇보다도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그저 수술은 꼭 해야 할까요. 이런 물음을 웅얼거리듯 일어나며 했을 뿐이다. 별다른 답은 없었다. 혼잣말이라고 흘려 들었거나 수술 앞둔 환자들의 넋두리 정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예상대로 의사는 병원 내 유명인사였다.

  수술은 두 달 뒤로 잡혔다. 

  그리고 두 달은 이틀처럼 지나가버렸다.


  물론 그전에 수술 전 검사와 코로나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층에서 이뤄지기도 했고 워낙 짧은 시간 병원에 머무른 탓인지 별다른 소회가 들지 않았다.

  다만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알리자마자 돌아온 건 수많은 수술의 가부에 대한 의견들이었다. 

 그렇다. 그들에게도 자궁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각각의 자궁이 있었고 그 자궁은 일반적인 문제와 자신만의 유니크한 문제를 각각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화제에 오르기 힘들었던 주제로서의 자궁이 대화에 전면 등장하자 마치 예정일이 아닌 날 생리 터지듯 당황스럽고 급작스럽게 각자의 자궁 이야기로 이어졌다.


  각각의 자궁은 각각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하나의 자궁에 백 개의 사건과 사고.


  아무튼 다른 자궁의 생리 시작일과 길고 긴 역사의 마무리는 나의 수술에 대한 찬반투표로 이어졌다. 듣다 보면 이럴 바에 아예 SNS에서 찬반 투표로 결정해야 하나 또는 그 공간안에 있는 여성들의 거수투표로 해야 하나 하는 황당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 마라 파의 의견을 듣다 보면 어찌나 설득력이 있는지 마치 수술을 결정한 의사가 돈만 밝히는 기술자로 느껴졌다. 

  하라 파의 조언은 전문가에 대한 신뢰와 시기에 대한 좋은 결정이라는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인상 좋은 의사와 벽에 걸린 기사를 떠올리며 그래, 결심했어!! 수술이야!!! 주먹을 쥐게 했다.

  다만, 이런 반응이 하루에 몇 번씩 바뀐다는 게 문제였다.


  마음만 흔들릴 뿐 시간이 흐르고 나는 어느덧 병원이었다.

  마음은 계속 도망치고 싶은데 몸은 이미 수술용 주사기가 세팅되고 항생제 테스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확인서를 받기 위해 온 레지던트에게 사인을 하다 말고 매우 진지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말했다.


  주변에서 말이 많아서 심리적으로 좀 흔들렸습니다. 선생님, 제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납득이 되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다들 뭘 보고 오시는지. 하하. 잘 아시는데 또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시고. 자궁에는 근종과 난종, 용종이 생겨요. 근종은 근육이 변형된 조직이고 낭종은 흔히 물혹이라고 하죠. 이 두 종류는 아주 크지 않으면 수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용종은 이상 조직세포거든요. 그래서 꼭 수술을 해야 하는 거죠.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님은 종양이에요. 게다가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제거해야 하는 거죠. 


  레지던트의 말을 듣고는 수술이 다 끝나기라도 한 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동안 가부에서 부를 주장했던 사람들에게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내 상태를 나도 잘 몰랐던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저러나 만사가 귀찮았다. 


  4인실의 내 침대는 화장실 앞 쪽에 배당되었다.


  내 침대 옆에는 꽤 오래 입원한 듯한 환자가 있었다. 그리고 중국동포로 보이는 간병인이 있었다. 간병인은 중국동포 사투리로 대답 없는 대화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그의 대사는 눈을 떠봐요. 눈을 떠요. 그만 자요. 자면 안 돼요. 밥을 먹어야 해요. 물을 마셔봐요. 빨대를 쭉 빨아요. 자지 마요. 어찌 계속 잠만 자요. 그만 자요. 밥을 어쩔 거예요. 눈을 떠요. 눈을 떠봐요.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반복되는 독백은 하루가 지나자 그 낡고 얇은 커튼 사이에 붙어 있는 침대의 내게 말하는 듯 선명하고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대답 없는 환자와 마주 보는 창가 침대에는 70대 여성이 있었다. 간병인은 남편인 듯한 헌팅캡을 쓴 노인이었다. 두 사람은 커튼 안에서 뭔가를 먹고 마시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병원의 4인실은 대화를 감추려고 하면 더 선명하게 들리게 만드는 놀라운 방구조였다.

  게다가 커튼은 이야기를 빨아들이고 증폭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수는 되지만(사실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온갖 얼룩들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서 방수인 척하는 싸구려 폴리에스테르일 거라고 짐작만 할 뿐) 방음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화 중 잔기침에도 펄럭거릴 정도였다.

 그 덕분에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그들 부부에게는 아들이 둘, 딸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아보니 아들은 구색 맞추기용으로 하나 정도, 딸이 여럿 있는 게 부모가 늙을수록 더 좋은 가족 구성이라고 했다.  딸은 부모의 마음을 살갑게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가깝게 느끼게 만든다는 대목에서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의도하지 않았던, 순수한 청자였던 나는 그 대목에서 아니, 특정할 수 없는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을 생물학적 공통점만으로 <세상의 모든 딸들>로 그루핑을 하고 그에 대한 정체성을 너무 안일하게 정의하시는 것 아닌가요. 하는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으나 내 주제를 생각하며 차가운 보리차를 꿀꺽 삼켰다. 

  기울어져 있던 편견은 나이가 들면서 기울기가 더욱 심해지고 생각은 더욱 단단해져서 부러지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을 자주 봤다. 반면교사의 예시는 이미 일상에서 충분했다. 

  잘 늙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내 침대 앞쪽, 다시 말해 화장실 옆쪽 침대는 내가 들어간 후  10분 뒤쯤 채워졌다.

  환자 자체로는 나이를 전혀 가늠하기가 힘들었는데 이유는 이러하다.

  가을비가 내리는 오전, 하늘은 어두웠고 입원실의 공기도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독하게 아픈 사람과 간병에 지친 사람들이 뿜어내는 힘겨움과 낙담, 슬픔 그리고 암담함은 비가 오는 가을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섞여 절대 낫지 않을 것만 같은 절망감과 진보적 의술에 기대는 약간의 희망이 어색하게 섞여 있었다.

  환자는 그레이톤의 비니와 젠틀몬스터 선글라스를 쓰고 들어왔다. 그는 익숙하게 커튼을 레일을 따라 휙 잡아당겨 자기 공간을 확보했다.

 간병인은 한 명 외에는 출입 불가하다는 규칙 때문에 아들과 남편이 수시로 교대를 했다.

 회진을 온 의사에게 간병인 없이 운영되는 병동으로 이동을 원한다고 하자 일단 여기서 며칠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곳은 간병인 없는 통합 병동으로 가는 대기 장소였던 것이다.

 그쪽 침대 공간의 분위기는 밝아 보였다. 목소리도 가족들의 표정도. 

 무엇보다 환자의 목소리가 높고 환했다.

 그는 옆 침대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몇 살이냐는 물음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각자의 병명으로 진화되고 있었다. 밝고 환한 목소리는 2년 전 암 진단을 받았고 치료 중에 전이되어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었다. 그 순간 커튼 너머까지 공기의 파동을 느꼈다. 암담함이 담담함으로 변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의 오해를 용서하세요.


  4인실. 

  각각의 병명을 가진 각각의 나이대의 환자 네 명이 있는 그런 방이었다.

  침대는 협소하고 매트리스는 얇고 비닐로 덮여 있는 몹쓸 물건이었다. 베개 역시 엉망이었다. 잠귀가 밝은 탓에 잠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몸을 돌릴 때마다 바닥에 닿는 부위가 배겼다. 잠시인데도 욕창이 생길 지경이었다. 내 옆 침대의 노인은 어쩔까 싶었다. 


  이른 오전 두 번째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싸늘했다. 김이 오르는 따끈한 모포로 전신을 덮어줬다. 잠시 수술에 대한 불안감을 잊을 수 있었다. 산소 호흡기를 대고 마취 전문의가 부르는 약 이름을 세 번째로 들을 때쯤 기억을 잃은 것 같았다. 마취가 되는 바로 그 순간이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회복실이었다. 기도 삽관 때문에 목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하지만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병실로 이동했다. 죽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몇 시간 대기해야만 했다.

  드디어 끝났다. 

  시계를 보니 3시간 정도 지나있었다.


  30대 정도의 여자가 다급하게 병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내 옆 병상의 커튼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간병인이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 환자에게 말했다. 따님 오셨어요. 눈 좀 떠봐요. 

  딸은 차분하고 단단한 목소리를 가졌다. 엄마, 나 왔어요. 눈 좀 떠봐요. 

  대답은 없었다. 

  간병인은 자신이 얼마나 힘든 간병을 하고 있는지 딸에게 하소연을 했다. 밥도 안 드시고 계속 잠만 자요. 말도 안 하고 잠만 자요. 낮에도 자고 새벽에는 깨는데 눈만 감고 있어요. 의사는 밥을 드셔야 한다는데 드셔야 먹이죠. 입을 안 벌리세요. 아주 죽겠어요.

  딸은 넋두리를 들으면서도 엄마, 눈 떠봐요. 밥 드셔야 해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환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의 청각은 얇고 낡은 커튼 너머의 비밀스러운 공간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소리만으로 시각적 화면이 구성되고 있었다. 

  간병인이 잠시 그 공간을 떠나 복도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환자의 딸은 우는 듯했다. 그러더니 부스럭 침대 위로 몸을 기울이는 듯 소리가 낮고 가까워졌다. 마치 내 귀에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용하고 따뜻하지만 물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이렇게 죽으면 안 돼. 이러지 마. 이렇게 가면 안 돼요.


  그 순간, 나는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듣고 있었다는 것을 들킬까 봐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소리를 삼켰다.

  딸은 그 말을 하고 빠르게 방을 나갔다.


  옆 환자의 계속되는 잠과 식사 거부가 병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의도된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이라는 장소에서 과연 스스로 선택한 아사가 가능한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해 보기도 전, 나는 수술 후처리와 관련된 일로 바빠졌다.


  왜 눈이 부었냐는 간호사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제야 옆 침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궁 안에 들어 있는 거즈들을 제거하고 다시 거즈들을 채우고 다시 제거하고 진통제를 맞고 링거를 교체하고 약을 먹고 하루 동안 약으로 벌려놓은 자궁을 다시 수축하기 위해 수축제를 먹고 그로 인해 출산 시 고통을 느껴야 했고 올해 최고의 맛없는 죽을 먹어야 했고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 싶어졌다.

  퇴원해도 될까요. 

  의사의 허락이 떨어졌다.


  가방을 싸서 방을 나오기 전 옆 침대의 환자를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그 바람이 지나쳐 그 얇은 커튼을 실수인 척 살짝 젖힐 뻔 했다. 결국 병실 문을 나올 때까지 그 환자의 목소리도 모습도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방 입구 안쪽에 서서 커튼으로 가려진 세 공간을 향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히 계세요. 모두 완쾌하시기를 빕니다.

  선글라스와 헌팅캡 공간에서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끝내 옆 침대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병원 밖은 건강한 사람들의 또는 건강한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또는 건강해진 사람들의 경쾌하고 밝은 에너지가 가득했다. 그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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