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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가가일 Aug 02. 2024

아기는 예쁘고 남편은 밉다

호르몬의 변화라고만 하기에는 이성적인 이유들이 우후죽순으로 발견되고 있다

아기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만 5개월을 바라보고 있다.

이 아기를 낳으려고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 보다 싶을 정도로 아기는 너무 예쁘고 깜찍하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혼자서도 잘 놀고 같이도 잘 놀고 낮잠도 잘 자고 밤잠도 12시간을 내리자는 아가를 둔 복이 터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부족으로 골골대고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기에 대한 내 사랑이 커갈수록 남편에 대한 내 사랑은 반비례하며 줄어들고 있다.

이제 그래프에서 마이너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과 독일 7000킬로미터의 장거리연애도 일 년 반 견뎠던 우리, 함께 한 도시에서 살아갈 날을 꿈꾸며 한국에서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해서 일 년 동안 돈을 모아 바로 독일에 날아왔다. 어학을 하고 대학원에 다니고 취업을 하고 이렇게 육아휴직을 하기까지 거의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가난했던 지난 시간들 동안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사랑도 현실적인 근간도 여태껏 착실히 쌓아온 우리가 아기를 낳고 이렇게나 싸울 줄은 나는 정말 몰랐다.


남편의 프리랜서 직업의 불안정성 (노후대책 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다), 노력대비 비효율성 (남편의 연봉은 나보다 50프로 이상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적연금 등 제외하면 결국 비슷하다), 무엇보다 예술가 기질과 완벽주의의 남편은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피폐해져가고 있다. 번아웃과 그로 인한 운동부족, 코로나 이후로 기존에 쓰던 공유사무실을 정리하고 집에서 일을 하는데 (다행히 층은 분리가 되어있다) 햇수로 5년째 나와 한 공간에서 생활하니 질릴 만도 하다. 아기를 낳고 예민해진 나에게 육아휴직, 재정관리, 직업에 대한 앞으로의 비전이나 대책마련 등등 남편이 내게 약속한 것은 많은데 지킨 것은 없어서 나는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지 5개월 차이다.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요구해서 남편이 어쩔 수 없이 약속한 것이기에 진행속도가 안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스스로 정말 원하고, 시급히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결국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당장 하게 되어 있다.


내게 중요한 것들이 남편에겐 중요하지 않고 나는 그런 것들이 쌓여 10년간 정말 사랑하던 사람에게 어떠한 사랑도 못 느끼고 있다. 그나마 안쓰러움은 남아서 밥은 가끔 차려준다.


아기는 너무 예쁜데 과연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 사람과 같은 선택을 할지는 정말 의문이다. 그 선택을 하게 된다면 현재의 마음으로서는 오로지 나의 아기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지금이 너무 슬프고 외롭다. 산후 우울증이라고 하기엔 돈 문제와 미래 문제가 너무 얽히고설켜있다. 다음 주에는 처음으로 부부상담에 가기로 했다.


여기까지 와 버렸구나. 결국 우울이라는 검은 개를 안고 가는 나의 문제인 걸까. 내가 사랑했던 그는 어디 있고 그를 사랑하던 나는 어디 있을까. 결국 현실 앞에 사랑은 큰 힘이 없구나 라는 진부한 말을 하는 애기엄마가 나는 되어버렸구나. 그래도 아기 앞에서는 절로 웃음이 나오고 노래가 나온다. 하지만 결국 아기 앞에서 지난 5개월 동안 최소 다섯 번은 싸운 것 같다... 내가 생각한 최악은 아기 앞에서 큰 소리 내고 싸우는 것인데, 이미 최악을 다섯 번이나 경험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모두들 아기가 세 살이 되기 전에는 원래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 거라며 특히 산후 호르몬의 영향으로 남편이 꼴 보기 싫은 것 또한 흔한 것이라며 위로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겪는다고 해서 내 문제가 덜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힘들면 힘든 거니까. 나에게 힘듦은 절대적인 것이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아기가 11시간 통잠을 자기 전에 1시간 잠투정을 하면 나는 그냥 힘들어 죽을 것 같은 것이다. 


쓰고 보니 감사의 부재가 느껴진다. 억지로라도 감사일기를 쓰며 감사하는 뇌를 만들면 이 모든 것이 좀 나아질까. 일 육아 살림 모두 노력하고 있는 남편이 꼴 보기 싫고 한심해 보이는 것은 그저 정말 산후우울증 때문일까. 다른 사람들이 좋은 남편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성에 차지 않아서 욕 듣는 남편에게 정말 미안하기까지 해서 우리 헤어져야 할까라고도 얘기해 봤다. 나에게 부족... 하다고 해서 네가 못난 것은 아니니까. 그저 나는 내게 부족한 너를 내 기준에 맞추는 노력을 직접 하느라 나를 돌보고 아기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내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내 기준을 낮출 수 있으면 정말 간단해질 문제인데 나는 이 세 가지를 포기를 못 한다. 독일에서 저녁 6시 이후의 삶이 보장되는 직장과 (프리랜서라도 이 부분을 지킬 수 있다면 상관없다) 노후 준비를 매달 하는 것 그리고 지금보다는 나은 환경으로의 이사를 위해서 목표액을 정하고 매달 저축 및 투자를 함께 해 나가는 것. 몇십억을 벌고 모으자는 게 아니고 나 또한 당장 그런 능력이 없고 다만 나는 지금과 같이 앞으로 살아가면 분명 불행해질 사람이기에 대안을 마련하자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이 그를 위축되게 만들고 무엇보다 미루는 것을 좋아하고 돈에 대해서 무지한 그에게는 아기가 태어난 새 환경에 적응하는 이 첫 5개월 동안 나에게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어지러운 것 같다.


이 모든 시간들을 겪으며 나는 그저 혼자이고 싶다. 아 그래도 우리 딸랑구는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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