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 되었는데 외롭다

사랑만 바라보고 여태 버티고 쌓아왔는데 가시 돋친 고슴도치가 되어 버렸다

by 달빛노래

뻘하게 터졌다.

그저 울음이 예상치 못한 주말 어느 날 터져버렸다.


복직한 지 이주, 일은 너무 많고 팀장도 조직도 업무도 많은 것이 변화된 회사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것도 커졌다. 하던 업무로 복직한지라 첫날을 제외하고 둘째 날 노트북이 켜지자마자 쏟아지는 메일들과 과제들.

아직 변화된 조직을 파악하지도 헤드셋이며 마우스며 필요한 물품들을 주문하지도 못한 채 이주가 흘렀다.


재빠르게 변화하는 산업과 일터에서 쓰는 소프트웨어들. 할머니가 된 것처럼 예전에 할 줄 알던 것들을 기억해 내는 데에도 변화된 것들을 따라잡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한데 파트타임으로 복직하고 칼퇴를 해야 하는지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스에게 솔직하게 말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내가 나 스스로 맘 졸이는 것보다는 일을 잘해 보였는지, 내가 이 주간 해 낸 것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보스는 날 칭찬하며 일을 더 던져주고 사장급 발표를 이주 뒤 나더러 하라며 지시했다. 아직 자료도 준비 못했고 자료를 준비할 줄도 모르고 바뀐 툴도 쓸 줄 모르며 야근을 할 수도 없는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되는 파트타임인데.


지난 이주 동안 동시에 아이는 보육시설에 가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가며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는데 남편에게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기는 하나 그래도 잘 적응하고 있다고 보육할머니가 얘기해 주셨다.

잘 적응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고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남편에게 의지하며 달라붙는 게 어쩌면 참 다행인 건데 내 맘속 한 곳이 저릿하다. 아이는 참 투명하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절대적 양과 주양육자가 쏟아붓는 정성과 갈아내는 인내와 체력만큼 딱 그만큼 애착이 형성되는 것 같다.

지난 일 년간은 내가 쏟아부은 9-6 만큼의 애착이 형성되었었고 지난 서너 달간 내 체력과 우울 때문에 나는 부양육자로 전락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있어도 아빠만 찾는다.


복직과 등원이라는 큰 이벤트 두 개가 동시에 진행되었던 참 벅찼던 지난 이주.


그 사이 남편은 여태껏 임신 이후 줄곧 우리 부부싸움의 주원인이었던 육아수당 관련해서 또 새로운 문제점을 내게 들고 왔다. 남편이 프리랜서인지라 관련 개정이 잘 나와있지 않기도 하지만 임신기간 내내 출산 초기에 그리고 지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참 많이도 얘기했는데.. 잘 알아보라고 미리미리.. 월말까지 딱 이주 남기고 급하게 새로운 문제점 두 개를 가져와서 해결이 될지 말지도 모르는 상태이다.


천만 원 가까이 되는 추가 육아수당 조건 맞추는 것 때문에 내 복직이 급하게 두 달 앞으로 당겨졌고 그래서 운동을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복직하게 된 건데, 무엇보다 이 문제로 계산하고 고민하느라 정말 수십 시간을 투자했는데... 무엇보다 몸도 마음도 힘든 내가 참 오래 그리고 힘들게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는데... 이 문제 때문에 참 많이도 싸웠는데... 결국 남편의 무지로 인해 내가 복직을 당겼음에도 그가 조건을 못 맞추면 천만 원의 추가 육아수당이 날아갈 판국이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천만 원 내가 내고 지난 일 년 넘는 시간 동안의 스트레스와 시간과 에너지와 무엇보다 그와 했던 그 모든 싸움들,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힘들고 괴로워했던 그 시간들을 돌이키고 싶다.

천만 원 안 받고 천만 원 내고 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


타국에서 일은 너무 힘들고 아이와의 애착은 멀어지고 체력과 멘털은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위태롭고... 그런데 내가 의지할 유일한 남편에게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고 지치고 슬프다.


이렇게 멍청하고 이렇게 세상에 순진할 줄 알았으면 결혼하지 않았다.

딸에게 정말 좋은 아빠지만 나에겐 경제적인 부분,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너무 나쁜 남편이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이 사람. 십 년 넘게 이 사람과의 미래만 꿈꾸며 죽어라 공부하고 일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사랑하나 만 보고 결혼했는데 이런 현실 속에서 그가 내미는 모든 사랑의 언어들로도 내 헛헛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 죽을 듯이 외롭다.

멍청한 놈아, 능력 없는 놈아 라는 욕을 듣고도 내 밥을 차려주고 아이를 주말 내내 혼자 봐주고 장을 보고 집안일을 하는 착한 남편이지만, 나는 내 말을 들어주고 내 위태위태한 복직 후의 부담과 아이로부터 외면당하는 저릿함을 공감해 주고 따듯하게 먼저 손 내밀어주고 먼저 안아줄 남편이 필요하다.


이 타국땅에서, 외국인 노동자인 나는, 워킹맘인 나는, 뾰족하고 우울하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나마 복직 직후 시작한 주 3일의 조깅과 운전이 나를 살려주고 있다.


완벽주의자여서 스스로와 타인과 세상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서 스스로를 너무 괴롭게 하는 나 자신에게 오늘만큼은 그래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많이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일에서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주어진 시간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내 역량을 펼쳐보자고 못하는 건 못한다고 우겨도 보라고, 난 딸에게 일 년 넘게 완전 모유수유 그것도 직수만으로 내 모든 것을 주며 충분히 최선을 다 했고, 지금은 복직하고 일에 적응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시간과 온 마음을 다 주지 못하지만 다행히 남편과 시어머니와 좋은 보육할머니가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만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고맙고 미안한데 정말 너무 원망스럽고 그로 인해 너무 외롭다.


다음 부부상담 예약이 곧 잡혀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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