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을 다시 끊었다 필요가 없어져서

과연 계속 그럴까

by 달빛노래

둘째를 임신했다.

놀랍게도 계획임신이다.


부부상담가도 내 새로운 개인 심리상담가도 둘째 계획은 첫째가 최소 세돌은 됐을 때 적어도 아직 두 돌이 안 됐으니 내년쯤 시도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과 당부를 했었다.


그러나 우리 둘은 우리 둘의 문제에도 설령 이혼을 하고 내가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도 둘을 낳고 싶었고 (종족번식의 본능이란 이성의 영역을 넘어선다) 나는 올해가 넘어가면 임신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건 참 논리적으로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30대 중반인 나는 체력도 너무 없고 우울도 심하지만 자녀계획 자체가 애초에 0 아니면 2였다. 물론 둘째가 생기지 못하는 상황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생길 수만 있다면 두 살 터울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돈과 시간 에너지적으로 아무리 따져봐도 여자로서 어차피 임신 출산 육아를 하는 시기가 총기간이 짧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초등학교 저학년인 동안에는 풀타임 커리어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둘을 낳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별이 다르더라도 아무리 미니멀리즘으로 살겠다고 다짐해도 육아용품의 양은 어마무시한데 이고 지고 둘째를 위해 보관하는 기간도 2년이 맥스라고 생각했다.

그냥 3년은 싫었다. 안되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계산기를 두드려보았을 때 24개월에서 30개월 사이의 터울이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이 또한 나만의 기준에 입각한 강박적 완벽주의.

여하튼 계획임신은 생각보다 빨리 성공했고 나는 임신을 하고 우울증 약을 이번에는 끊었다. 첫째 때는 임신 기간에도 산부인과와 정신과 의사의 실보다는 득이 많다는 조언에 따라 약을 계속 복용했는데 (Escitalopram 5-10mg여서 안전하다고 전문가가 판단) 이번에는 그냥 내가 싫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한 지 고작 한 달 정도 지나 임신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바로 끊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난 지난 두 달간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고 우울이라기보다는 정말 딱 무기력만 있었다. 첫째도 감당이 안되고 독일에서의 직장생활, 안정적인 삶 자체가 이렇게 자주 흔들리는 와중에 둘째를 가지는 건 정신 나간 일이 아닐까, 감당 못 할 내 능력 밖의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남편과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등 걱정도 많지만 종족번식의 욕구란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이 모든 걱정과 현실적인 당장 대안이 없는 고민들을 뒤로하고도 기쁨이 훨씬 더 크다.


돌아보면 첫째를 임신한 그 기간 동안이 지난 5년간의 시간 중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임신을 하고는 오히려 번아웃에 한시적 파트타임까지 했던 내가 일의 능률이 극대화되어서 날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일이 중요하지 않아 졌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일이 더 잘됐다. 그만큼 내가 일에서, 타인의 평가와 내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부담을 크게 느끼며 살아왔다는 반증이었다. 첫째를 임신한 동안에는 병가도 딱 한번 감기 때문에 일주일 냈던 게 전부였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체력적으로 입덧과 무기력증이 심한 탓도 있지만 첫째 때 내가 일에서 아무리 날아다니고 파트타임에도 불과하고 풀타임 이상의 성과를 내고 병가 거의 없이 출산휴가 직전 마지막 날까지 인수인계 완벽하게 하고 퍼펙트하게 일하고 갔음에도 그것을 기억하는 이는 하나 없다는 사실을 꺠닳았다. 내 직속 보스와 그 위의 보스들도 다 물갈이되거나 퇴사했다. 2년 전의 성실하고 능력 있던 나를 기억해 주는 이는 회사에 없다.


이번에는 내 몸과 마음이 1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둘째의 안녕이 걱정됐다. 안정기까지 아이가 생존할까 하는 걱정이 첫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컸고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무기력증과 입덧 등 부담이 너무돼서 병가를 한 달 이상 길게 냈다. 12주가 꽉 차기 전에 일에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어떤 다른 이유로 아이가 잘못됐을 경우에도 나는 이 일을, 조직을, 나 자신을 용서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에서 마음이 많이 멀어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앞으로의 커리어도 불투명하고 독일어로 Salat (샐러드)라 표현되는 중구난방인 회사의 지난 3년간의 상황을 보며 어차피 다녀도 당분간 파트타임아줌마로 5년-7년은 다닐 테고 그게 아니라면 육아휴직 후 이직해야 하는 상황이겠지 라는 계산이 드니 굳이 나와 내 아기의 건강과 타협하며 임신초기에 힘든 상태로 꾸역꾸역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일을 할 이유가 하등 없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독일에서 일하며 사는 이유가 임신 출산 육아 때문인 이유가 절반 이상인데.


팀장에겐 병가 중간쯤 임신 사실을 초기지만 알렸고 돌아오는 반응은 차가웠다. Congrats. 딱 한마디 그리고는 바로 이어지는 다음 계획에 대한 이야기.


이 또한 상관없다. 육아휴직까지 남은 반년 남짓의 시간 동안 나는 적당히 일을 쳐내기만 하면 되고 몸이 아프면 다시 병가를 바로바로 쓸 예정이다. 이왕이면 일이 재밌고 일에서 의미를 찾으며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찾고 배워나가며 일하는 시간을 의미 있게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최대한 돈 받고 최소한만 하며 일에서 거리를 두고 싶다.


우울증의 큰 원인이 외부로부터 받는 인정에 대한 내 안의 욕구가 너무나도 큰데 산업도 직무도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의 시스템적인 환경도 (팀에 기혼유자녀가 한 명도 없어서 나만 유니콘이다, 기껏 워라밸 찾아 독일회사에 왔더니 글로벌팀이 되어 아시아 & 미국 서바이벌 근무마인드) 나와 너무 동떨어져있으니 더 고립되고 길을 잃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는 깨달음이 쉬는 동안 생겼다.


깨어있는 11-12시간 동안 단 1분도 말도 움직임도 쉴 틈이 없는 돌쟁이 첫째와 뱃속에 있는 존재로서 축복자체인 둘째를 생각하면 엄마도 엄마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찾아내서 다듬고 가꾸어서 그리고 키워내서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무엇보다 엄마 자신을 잃지 않으며 대체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날들이 많은 꽤 건강하고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둘째를 임신했다.

우울증 약이 필요 없어졌다.

계속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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