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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가가일 Apr 19. 2023

이제는 인정할게. 나 정말 뇌가 고장 났나 봐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는 눈물이 멈추질 않을 때

남편은 내가 앞으로 3년 동안 우울증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는 소식에 생각보다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며 의사가 한 말처럼


"독일에 해가 너무 없어서 비타민D 매일 먹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지 뭐. 괜찮아. 괜찮아."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줬다.


그래 세 번째지... 내가 잊었다. 첫 우울증에, 첫 약 복용 결정을 할 때는 참 많이 고민하고 심지어 한동안 약복용에 조심스레 반론을 제기하던 남편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내려놨고 안타깝지만 적응도 했나 싶었고 또 고마웠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오늘, 거의 한 달 만에 하는 출근.


병가 열흘 그리고 이 주간의 부활절 휴가 이후 어제 홈오피스를 힘들었지만 무난히 해냈다.

아홉 시 반까지 모든 잘 준비와 명상을 마치고 미리 푹 아홉 시간을 내리 잤는데도 일어나려니 남편 품에서 아기처럼 벗어나기 무서웠다.


"아침 도시락이랑 물병 꼭 챙겨."


정말 따듯한 내 남편. 그가 항상 싸주던 사과 반 개와 바나나 반 개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견과류 한 줌이 들어간 아침 도시락과 가는 길에 마실 물병. 한 달만이다.


도시락을 챙겨 들고 역까지 걸어가면서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멍하지도 않고 그냥, 그냥 출근길 직장인 같이 걸어서 중앙역에 도착했다.


'독일사람도 출근길에는 참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구나. 인상 쓰고 땅만 보는 사람들이 많네. 다들 힘들겠지. 오늘 하루 쉽진 않겠지만 그냥 해보자.'


사람 가득한 기차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데 기분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감사 일기나 짧게나 써 볼까...


    그냥 순간순간만 집중해 보자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음에 감사하고

    기차를 제 때 타서 감사하고

    역까지 잘 걸어와서 감사하고

    몸이 건강해서 감사하고

    아침도시락을 싸 주는 남편의 사랑에 감사하다

    눈물이 나면 그냥 양해구하고 울어


휴대폰 메모장에 순식간에 써 내려간 감사하는 것들. 그리고 문맥과 맞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쓴 마지막 문장.

    눈물이 나면 그냥 양해구하고 울어


마지막 문장을 쓰고 카톡을 오늘 처음으로 열어봤더니 한국에 있는 가장친한 친구에게서 와 있는 카톡.

최근 친구가 예쁜 딸아이를 낳았는데 친구 애기가 친구 어머니 품에 안겨 와앙하고 우는 짧은 동영상과 귀여운 사진 몇장이 보내져 있었다.



친구에게 답장을 하고 한 30초가 지났을까 갑자기 내 양쪽 눈에서 또르륵. 또르륵.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엇. 응? 아니 왜? 이게 뭐야'

당황스러워서 얼른 휴지를 찾아서 왼쪽 뺨을 닦고 오른쪽 뺨을 닦았다. 맞은편에 앉은 20대로 보이는 독일여자가 쳐다보는 게 느껴질 때 다시 흐르는 눈물. 왼쪽 눈 콕, 오른쪽 눈 콕. 콧물도 줄줄.


'망했다. 왜 이러냐. 왜 울어? 슬퍼? 괜찮았는데 출근길???'


5분밖에 안 걸리는 짧은 거리에 기차는 금세 회사가 있는 역에 도착했고 나는 내리면서도 울고 회사 출입게이트까지 있는 주차장을 지나가면서도 멈추지 않는 눈물에 어쩔 줄을 몰랐다.


"나 질문이 하나 있는데... 지금 내가 우는데, 이유는 모르겠고, 이대로 일단 게이트 지나 사무실에 올라가서 진정해 볼까 아님 출근이 좀 늦어지더라도 진정하고 들어갈까? 모처럼 하는 출근이고 정말 오랜만에 이른 기차도 탔는데..."


자동적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내가 깨닫기도 전에 이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일단 진정부터 하고 사무실에 올라가는 게 좋겠다는 게 남편 의견이었고 눈물이 나게 된 트리거는 뭐였는지 묻는 남편의 질문에 나는 그제서야 내가 회사가 있는 도시 이름이 기차 표지판에 뜬 것을 보고 난 후 아마 울기 시작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울면서 통화를 하며 회사 주변을 서성거리다 타 부서 사람 두 명이 내가 우는 걸 본 것 같아 어딘가로 숨고 싶었지만 정말 숨을 곳 하나 없는 회사 앞 주차장 벌판...


가까스로 심호흡을 한 이십 분 하고 겨우 회사 출입게이트에 사원증을 찍고 들어갔다. 여긴 공장이라 참... 무슨 감옥 같은 철창을 통과해야 하는데 오늘따라 사원증을 찍으며 그 좁은 회전철창문을 통과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한 서른 걸음 걸었나 사무실이 있는 건물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두두둑


'진짜? 정말? 아니 왜?'


또 터진 눈물. 와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정말.

다행히 눈물이 터지자마자 1층 타 부서 전용 여자 화장실에 뛰어 들어가다시피 들어가 화장실 한 칸에 숨어 숨을 골랐다. 그렇게 터진 눈물이 20분? 이 지났나 겨우 진정이 돼서 거울을 보니 다행히 눈이 많이 빨갛지는 않았다.


다시 심호흡을 하고 화장실 문을 나서는 순간.


맞은편에서 1초 만에 다가오는 내 전보스. 나를 뽑아준 나를 믿어준 내게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이 회사에 잠깐 계약직으로 다녔던 대학원 과탑동기가 나에게 once-in-a-life-time-chance 라던 그 기회를 외국인인 나를 믿고 나에게 준 내 전보스의 얼굴이 1미터 앞에 있었다.


"(독일어로)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냈어? 아팠다고 들었는데 이제 괜찮아?"


두두두두둑


터져버렸다. 엄마 같은 표정을 하고 물어보는 그녀를 보고 나는 사회적 얼굴, 회사에서의 내 이미지, 자본주의 미소 이런 거 하나도 신경 못 쓰고 제어와는 거리가 멀게 그저 반자동적으로 와아아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와앙하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러곤 반 자동적으로 바로 뒤돌아 다시 화장실로 들어왔다.


"너 전혀... 괜찮지 않은 거구나 그렇지? 내가 안아줘도 되니? 아님 혼자 있고 싶니?"

화장실로 따라 들어온 그녀가 정말 배려있고 또 조심스럽지만 따듯하게 묻는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끅끅 거리며 울기만 하는 내게 다시 묻는 그녀.


"내가 안아주면 안 될까?"


끄덕끄덕.


그렇게 한동안 울고 겨우 말을 꺼냈다.

"오늘 회사에 와서 너무 좋았고 일을 다시 할 생각에 걱정도 되지만 기뻤는데, 제가 지금 제 상태가 조절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조금만 지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여기서 조금만 있다가 갈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러자 그녀는 정말 깔끔하게 나가며 본인 사무실은 1인 사무실이라 내가 숨어 울곳이 필요하면 오늘 문을 열어둘 테니 언제든 들어오라고 하며 미팅이 있어 먼저 가봐야 한다고 미안하다며 나갔다.


참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멈추지 않는 눈물.


'오늘 분명 우울증 약도 제 때 잘 챙겨 먹었는데 정말 왜 이러지 나? 와 진짜 이제는 노답인 것 같다. 나 진짜 병 맞나 보다. 우울증은 정말 병이네. 뭐 슬프지도 걱정되지도 않은데, 그래 걱정은 오랜만에 출근이니까 좀 되긴 했지만 이렇게 울정도로는 절대 아닌데? 도대체 왜 이렇게 울고 지금 이 울음이 그치지 않는 거지?? 심호흡을 해보자. 명상을 해보자'


그렇게 애플워치에 늘 명상할 때처럼 타이머를 15분으로 맞춰놓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데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꺼내든 비상용 약. 지난주 의사에게 한 달 전 사무실에서 패닉이 와 병가를 내게 된 그날의 이야기를 하니 의사가 처방해 준 비상용 약. 딱 하루 한 알만 먹으라던 그 약을 처방을 받은지 한 달 만에야 처음으로 입에 넣었다.


그러니 눈물이 더 났다.

'와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약도 다 먹어야 하는구나. 그냥 주니까 일단 받아만 놔야지 싶어 받았고 혹시 몰라 노트북가방에 넣어놨는데 내가 이게 정말 필요한 상태라니. 제발 효과라도 있어라. 심장약이겠지 뭐. 심장박동 늦춰주는...'


타이머를 보니 아직 남은 5분...

'아 그냥 사무실로 올라가자. 될 대로 돼라. 눈은 빨갛지만 일단 눈물은 안 나네'


그렇게 올라간 사무실.


한 달 만에 보는 완벽해서 내겐 로봇 같기만 한 그리고 아직 어색한 새 동료의 얼굴을 보며 인사를 하고 옷장에 겉옷을 거는데


두두두두둑.

맙소사. 다시 눈물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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