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도 아닌 딱 일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한국에 있는 나의 결혼식 증인 베프에게 여느 때와 같이 하소연 카톡 폭탄을 쏟아 부었다.
도저히 못 일어나겠어. 침대에만 있으면 더 우울하고 힘들어 질 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데도 일어날 수가 없어.
친구는 부탁했다. 제발 제발 밖으로 나가자.
수 차례 반복된 우리의 실랑이를 한 두시간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날씨가 너무 좋구나. 그런데도 나는 어두운 암막커튼 뒤에 숨은 채 우울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구나. 깨닫고 있는 찰나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딱 일분만. 정말 딱 일분만 전속력으로 뛰어 봐. 뒤에 살인마가 도끼들고 쫓아온다고 생각하고 딱 일분만.
만성 발 관련 질환이 있는 나로서는 뛰는 것을 싫어할 뿐더러 그럴 힘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지난 몇주간의 나 였다면 무조건 무시했을 그 제안에 그 순간에는 이상하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 분.
그 일 분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움.
십분 오분 삼분 아니 이분도 아닌 딱 일분. 육십초. 하나 둘 셋 넷 .. 열 까지 여섯번만 세면 되는 그 일분.
단순히 그 단어가 주는 가벼움에 세 번 정도 생각하고 그냥 뛰었다. 친구에게 보고를 해야했기에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달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휴대폰 화면을 보니 고작 30초가 지나가 있었다.
말도 안 돼. 반도 안 지났다고? 일분이 이렇게나 길다고? 그래도 일분은 채워보자.
참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더 더.
동영상 녹화 화면에 보여진 시간은 아직도 45초.
으아아아아아. 55초.
조금만 더. 01:00. 종료.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 시간이 쏜살같이 느껴질 때, 플랭크, 숨참기, 명상 이 외에 매 초를 아주 밀도 있게 느낄 수 있는 그래서 시간을 아주 느리게 제대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또 하나 알아냈다.
전력질주.
내일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 출국수속이 마감되기 1분 전 라스트콜에 내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하이퍼리얼리즘의 가정 하에 일분을 채워보겠다. 좀 더 빨라지려나.
아니, 이게 얼마만의 마음에서 부터 우러나온 진짜 내 목표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