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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간이 MeganLee Mar 20. 2021

내 옆구리의 문신

서른의 성장통


내가 문신을 한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모르고 내 친구들은 다 아는 그 문신은 내 왼쪽 등에서 옆구리로 이어지는 부위에 라틴어로 쓰여 있다.  

Alis volat propriis 


2018년 봄, 나는 29살이 되었다. 나이 먹는 데에 아무 생각 없던 나였지만, 서른은 달랐다. 오는지도 몰랐는데 어느 날엔가 보니 갑자기 턱 밑까지 훅 다가와 있었고, 그래서 무서웠다. 설명할 수 없이 불안하고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었고 그 기분에 작별을 고하기까지는 참 오래 기다려야 했다. (아마도 서른한 살 생일이 다 되어서야 끝났던 것 같다, 그러니까 무려 2년) 아무튼 유럽에 산 덕분에 나이 얘기를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대충 이십 대 초반의 기분으로 철없이 지내다가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서른의 성장통이 찾아오면서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건지, 응당 의문을 품을 만한 것들이어서 의문을 품기 시작한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누구나 아는 글로벌 브랜드 유럽 본사의 번듯한 직장, 내 힘으로 모기지 받아 산 집과 어린 나이에 집 소유주가 되었다는 자부심, 운명처럼 만나 오래 함께한 이해심 많은 남자 친구, 원하기만 하면 함께 그리던 대로 강아지도 입양하고 가족도 꾸려갈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던 미래. 좋아 보이기만 하던 이 모든 것이 어느 날 180도 돌아서 내 목을 죄이기 시작했다. 아, 이게 내가 진짜 원하는 거였나?


내가 이미 가진 것을 놓아주기란 너무나 괴로운 과정이었다. 차라리 뭔가를 갖고 있지 않아서 노력하는 것이 나에게 백 배는 더 쉬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결국 일을 제외한 모든 것을 떠나 보냈다. 5년을 채운 연인 관계를 끝냈고, 남자 친구를 통해 받은 파트너 비자를 취소했고, 집을 팔았다. 회사를 통해 비자를 새로 받아야 했고, 그 와중에 연봉 재협상을 해야 했고, 이 나라에서의 거취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사를 나와 새 아파트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필요한 물건만 최소한으로 사면서도 어차피 비자를 못 받으면 이게 다 무언가 하는 생각에, 텅 빈 아파트 바닥에 앉아 하늘만 먹먹하게 보던 밤들. 익숙했던 동네를 떠나 새로이 적응해야 했고, 내가 가진 친구들은 남자 친구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술 한잔 하고 싶어도 더 이상 연락할 사람이 없었던 것. 세상에서 제일 가깝던 사람과 멀어지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들과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다는 이유로 마음껏 아프지도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후회도 많이 했다.  허전함과 패배감이 이루 말할  없었다. 어제까지는  가진 스물아홉이었는데, 반대로 서른이 되고 나니 가진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건가? 행운에 겨워 배부른 투정을  거였나? 하지만 의문이 드는 만큼 속단하기보다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래서 인생의 속도를 늦추는  집중했는데, 퇴근하면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집에서 혼자 시간을   가지고  뭔가를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않고  번에 하나씩만 하는 식의 단순한 것들을  보았다. 그러자 ‘천천히라는 감각이 차츰 돌아오면서 상실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소유한 것이 없으니 책임질 필요도 없다는 것, 내 한 몸 건사하면 그만이라는 것, 누구에게도 더 이상 내 행위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건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자유였다. 나는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아서 두렵고 또 새처럼 자유로웠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두운 시간이 차차 정리되어가면서 나는 서른 하나가 되었다. 힘든 시기를 견디어 낼 때, 내게 중요한 어떤 문구가 몸에 새겨져 있다는 건 떠올리는 자체로 엄청난 위로였다. 마음에만 새겨도 충분히 좋을 그 말은 이런 뜻이다.

“She flies with her own wings”


나의 라틴어 타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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