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여름같은 날
비가 추적추적 오는 쌀쌀한 날씨가 2주 넘게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이번 주에 불현듯 찾아온 여름 같은 이틀은 별 희망 없이 연장되기만 하던 락다운과 통금이라는 가뭄의 단비였다. 20도에 쨍하게 비치는 햇살. 날씨가 기분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크던가, 하던 생각이 무색하게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그런 날.
공원은 피크닉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겨우내 햇빛을 보지 못한 흰 살을 드러내 광합성을 하고,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바비큐를 한다. 벚꽃은 갑자기 강렬해진 햇살로 더욱 흐드러지게 피어 꽃잎을 벌써 툭 툭 떨어트린다. 드러낸 어깨가 뜨겁다. 눈부신 날씨로 띵한 머리를 식혀줄 여름 메뉴를 떠올려본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차갑게 먹을 수 있는 뭔가 - 쿠스쿠스(Couscous)다.
쿠스쿠스는 좁쌀처럼 자잘한 파스타다. 북아프리카에서 흔히 먹는 음식 중 하나인데, 지리상 가까운 남부 유럽(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지)에서도 많이 소비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어디서도, 심지어 그 나라 남부에서도, 쿠스쿠스 요리를 본 적이 아직은 없다. 오히려 암스테르담에서는 쿠스쿠스가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인데, 모로코 이민자가 워낙 많은 데다가 네덜란드 고유의 식문화가 빈약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냄비에 물을 받고 야채 스톡 블록을 하나 떨어뜨린다. 물이 팔팔 끓으면 불에서 내려 쿠스쿠스를 붓고 잠시 둔다. 그 사이 오이, 토마토, 적양파를 잘게 썬다. 양파가 맵다면 볶아도 좋겠지만 최대한 볶기를 피하고 싶은 더운 날에는 손끝이 얼얼한 얼음물에 담가 맵기를 뺀다. 고수도 한 다발 썰어 넣는다. 잘게 썰수록 터지는 그 여름 향이 코를 간질인다. 커다란 유리 볼에 재료를 한데 담고 옆에 치워 두었던 쿠스쿠스를 보니 잔뜩 스톡 물을 빨아들여 덩이가 져 있다. 포크로 으스러트리며 그마저도 유리 볼에 담아 섞으면 완성이다.
접시에 쿠스쿠스를 담고 그릭 요거트를 얹어 먹어도 금상첨화, 나는 여기에 할루미(Halloumi)라는 치즈를 긴 블록으로 잘라 얹었다. 보통 야외에서 바비큐를 할 때 함께 구워 먹는 치즈다. 팬에 살짝 튀겨도 심하게 녹거나 하지 않는 게 특징인데, 살짝 짭짤하면서 어금니에 닿아 잘리는 쫄깃한 느낌이 중독적이라 구우면서도 자꾸 집어먹게 된다. 해를 머금어 한껏 뜨거워진 발코니에 접시를 가지고 나와 앉는다. 입안 가득 씹는 여름의 맛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