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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Nov 12. 2017

서울의 숨 값

저는 곧 지난 10년 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려 합니다. 그래서 이 글은 본격적인 노마드 라이프의 시작을 알리는 출사표이자, 서울살이 10년을 정리하는 회고록입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라이프 스타일에 도전해보고 싶어 서울을 떠나 완도에 온지 한 달 째.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달라지거나 변한 것은 많지 않습니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만큼 일하고 살아갈 자유를 선물했던 게스트하우스 대표님께서는 오늘 아침에도 여전한 미소로 굿모닝 인사를 건넸고, 문득 집중력이 떨어질 때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다를 향해 걷는 제 발걸음도 여전히 급하지 않습니다.


한달을 살아낸 지금 제가 보고 느끼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이곳 완도가 조금 심심한 동네라는 것입니다.


월요일 밤과 금요일 밤의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고 나이트 라이프(Night Life)라고는 비슷한 친구들과 비슷한 곳에서 맥주 한 잔, 회 한 점 하는 것이 전부인 조용한 어촌 마을.


땅끝 마을보다 더 멀리 있는 완도는 '매일 새로운 것들을 마주했던 서울'이 정말 경이로운 곳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서울의 숨값

얼마 전에는 매월 21일이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오피스텔의 월세 납부일이라는 것이 떠올라 잠깐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공간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만큼 아까운 소비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계산기를 두드리다 현기증이 나려 할 때쯤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서울에 거처를 마련해둘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완도에 내려오기 전 내가 살았던 곳. 단편처럼 기억나는 서울의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소리, 잿빛 하늘, 무언가에 쫓기듯 바쁜 걸음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 숨만 쉬어도 만원 지폐 수십 장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곳. 한때는 기회의 땅이라고 믿었던 곳은 어느새 저에게 삭막한 회색의 공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은 경쟁을 부추기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상대보다 더 갖지 못하는 것이 곧 뒤처지는 것이라 여기게 만들고,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에 혀를 차면서도 어느 순간 그들처럼 아등바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곳.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가쁜 숨을 내쉬며 열심히 달려왔는데 그 숨값이 너무나 터무니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을 떠나겠다는 결정이 더욱 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세상을 보는 온도

서울을 떠나 완도에서 한 달을 보내면서 저 스스로 세상과 삶,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따뜻해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서울에서였다면 체념하거나 포기했을 인간 관계도 사람이 소중한 이곳에서는 시간과 인내심으로,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때까지 나누고 나눴던 시간과 업무들도 조금은 느긋하고 여유롭게 처리하면서 온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쿠르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참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라는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저도 이제는 약간 알 것 같습니다.


조금은 심심하지만 느린 속도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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