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느끼는
나는 지금 샤를 드골 공항에 있다. 더 자세히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 몸을 한국으로 데려가 줄 비행기를 기다리며 모닝 핫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중이다. 그리고 여기 스타벅스에서 나는 고향의 맛을 느낀다.
여행은 완전히 끝나버렸다. 공항에 도착한 이상 지금부터는 여행이 아닌 고행이다.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를 예매할 형편이 되어서, 비행기마저도 여행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려면 이번 고행 끝에 찾아올 다른 고행들을 현명하게 다뤄야 한다.
여행(trave)이라는 말은 노동(travail)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도시에서 도시로,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로 가는 일이 엄청난 육체적 노동을 수반하는 일이었고, 이는 거대한 노동과 다름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말이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이던 시절과 비행기로 순식간에 국경을 넘나드는 요즘, 그리고 곧 상용화될 하이퍼루프(서울과 부산을 20분 이내로 연결)의 시대를 비교해 보자. 여행은 점점 노동과 고통을 덜어내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여행이 쾌락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퍼스트 클래스도, 비즈니스 클래스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노동은 성격이 다르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몇 시간이고 웃으며 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열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울퉁불퉁한 돌길에서 캐리어를 몰고, 몇 시간을 걷고 들어도 다 알지 못하는 미술관에 가는 일. 그 기꺼운 노동을 우리는 여행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여행하는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고 책을 읽었던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큰 비용을 들여 다른 먼 곳에서 하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모양이었다.
이곳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에서 고향의 맛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의 오후 일과는 대부분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무언가를 쓰는 일이었으니.
두 시간 뒤면 나를 태운 비행기가 이륙할 것이다. 어젯밤에 인천공항을 떠난 것 같은데, 어느새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니. 인생은 길지 않으니 걷지 말고 뛰라던 상하이 피스톨의 말이 떠오른다. 위스키나 초콜릿은 집어치우고 면세점에서 날개라던가 ‘10일 전으로 짠! 쿠키‘ 같은 걸 판다면 참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아직 샤를 드골에 있다. 아직 따뜻한 그란데 아메리카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