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회색빛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꿈을 꾸었는데 가장 정직한 것이 꿈이라고 꿈에서 정말 잊혀졌던 생생한 감정을 느끼며 깰 때가 있다.
한동안 못 느꼈던 과거 속에 꽁꽁 묻혀져있던 그런 감정...
꿈의 정확한 정황은 깬 순간 다 잊어버렸지만
그 꿈에서 느꼈던 감정만은 아직도 내 가슴에..
그 감정으로 인해 나는 잊혀졌던 과거를 다시 떠올리고 나의 무의식은 아직도 나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구나.
내가 현재에 어떠한 결심 행동을 하려고 마음 먹어도 왠지 모르게 그 결심을 행동을 꺼리게 되는 이유가 어쩌면 이러한 과거의 이러한 강력한 감정 때문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
이번에 꿈에서 느꼈던 감정은 색으로 표현하자면 아마도
회색빛.
두려움, 소외감 그런 빛깔의 감정들..
커가면서, 내 마음을 지켜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던 나의 오래된 두려움들.
사실은 이 두려움이 내가 만들어 낸,
그저 나 혼자 만들어 낸 틀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내 마음을 지켜보면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그 회색빛 감정은
그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그게 현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내 자신을 지켜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은 이혼 하셨고 우리 엄마 말씀으론 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는 편한 마음으로 태교를 하지 못 했다고 하셨다.(내가 성질을 부릴 때마다 "그래 내 잘못이지.. 너는 내가 태교를 잘 못 해서 그래"..하면서 자신을 원망하는 것처럼 하면서 나를 원망하신다..-_-;;)
암튼 우리 엄마는 두 딸과 함께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시느라 우리 자매를 어릴 때 시골 친척집에 맡기신 적도 있었고 커가면서는 나를 어린이집에,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맡기시면서 나를 열심히 키워주셨다.
엄마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하셨고 상처 받은 여자의 약한 몸과 마음으로 어린 두 딸의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던 그 심정이, 강하게 마음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비통했던 심정이 어떤 것이었을지 지금 편한 인생을 사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엄마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했지만 생계를 꾸리시느라 나에게 신경 쓰실 여력이 많이 부족하셨을테고 나이 차가 많았던 언니가 나를 아주 어릴 때는 잘 돌봐주었지만 언니가 점점 공부에 신경써야 할 나이가 되면서 나는 집의 쇼파에 앉아 홀로 엄마가 사주신 책 내용을 읽어주는 테이프가 딸린 오디오 책을 줄곧 들었던 기억이 있다.
유전적인 영향일까, 환경적인 영향일까.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떻게 친구들과 교류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 수 없었고 매년 새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새학기 첫날의 환경은 나에게는 회색빛, 두려움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학기가 시작되어서 친구를 만들어놓지 않으면 나는 학기 내내 회색빛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새학기의 두려움은 점점 커졌으리라.
예전에는 나의 환경을 많이 탓했는데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환경도 중요하지만 성격은 유전적인 영향도 크다고 한다.
나의 유전+사람과 교류하는 법을 그다지 자연스럽게 배우지 못 했던 나의 어릴 적 환경으로 인해 나는 새학기마다 회색빛의 감정을 경험했고 조금씩 머리가 커가면서 나는 회색빛의 감정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나의 본성보다는 더 오버하는 활발함의 가면을 썼었던 것 같다.
비교적 자신의 본성을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시절의 나의 사진을 보면 나는 웃는 사진은 찾아볼 수 없고 무언가에 화난 아이처럼 그저 무뚝뚝한 표정이다. 마땅히 기뻐해야 할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에서도 말이다.
얌전하고 무뚝뚝하고 어떻게 사람들과 교류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수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 해도 질문할 줄 몰랐고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바보라고 놀림받고 연필로 손바닥을 찍히는 그런 수모(?) 괴롭힘을 당해도 울거나 대항할줄도 몰랐던 그런 아이였더랬다.
그런데 중학교 사진에서부터 나는 갑자기 환하게 웃고 있고 친한 친구도 생기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중학교때부터 나는 농담이라는 것을 할 줄 알게 되었고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내가 살아남는지(?) 그것을 조금씩 깨달았던 것 같다. 시작은 비록 살아남기 위한 활발함의 가면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을 교류하는 좋은 친구와 사귀게 되었고 그러면서 나는 회색빛의 감정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다시금 나의 원래 본성에 가까워지면서 다시금 고립된 생활, 집단 속에 있는 것이 참 어색하고 괴로운 시절이었더랬다. 그래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다시금 회색빛으로 변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별명은 '꿀' (꿀 먹은 벙어리의 줄임말)이었고
나는 또 다시 나의 본성에 가까워지면 집단 속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집단 속에서의 나의 위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사람들이 그 후로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무엇을 하더라도 그저 '꿀'이고
'꿀 먹은 벙어리'의 틀에 갇혀 지내야 한다.
왜냐. 이제 다들 나를 그 틀에 가두어서 보니까.
그러한 고립의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나는 새로운 환경,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다시금 활발함의 탈을 쓰고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며
처음에는 이것 또한 나의 불이익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아 나의 본성을 드러내면 나는 불이익을 보았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나 역시나 중학교 때처럼 그 과정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나의 대학생활은 회색빛이 아닌 푸른빛을 띠게 되었다.
그 후로 중국어 전공이었던 나는 중국 유학을 가게 되고 중국 유학 생활에서도 활발함을 가장했던 시기가 있었고 또 다시 나의 본성으로 돌아가 고립의 생활을 자초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고립의 생활을 자초했던 그런 시절에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그 남편이 나에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엄마,친언니를 제외한 타인에게서도 나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대학교 때 친구와 우정을 나눈 적이 있으니 타인의 사랑이라기 보다는 이성의 사랑을 처음 느꼈다는 게 맞겠다)
내가 그 사람을 이토록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는 그때까지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나는 항상 활발함의 가면을 써야 했고 나의 모습을 숨긴 채 내가 먼저 노력해야만, 나는 가까스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그 사람들의 무리에 낄 수 있었고 그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노력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처음으로 나에게 너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진심의 눈빛으로 보여 주었고, 나에게 내 인생에서는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고 그런 그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이 없으면 나는 다시금 회색빛으로 돌아갈테니까.. 나는 이런 사랑을 다시는 받을 수 없을테니까..
그런데 지나고 보니 모든 사람이 처음에 사람을 알아갈 때 그렇듯 이 사람은 나의 본성을 처음부터 이해하고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해줬다기 보다는 나에게 자신의 환상을 뒤집어씌우고(?) 나는 이런 여자일 것이다 라는 자신의 환상에 맞춰서 그래서 나를 마음에 두기 시작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점점 알아가며 자신의 환상과는 맞지 않는 나를 보며 그는 실망하기 시작했고 나는 처음으로 노력없이 받았던, 조건 없었던 타인의 사랑에 감동했던 그 희열만큼이나 나를 보며 실망해가는, 차가워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을 느꼈고,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고통을 또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는 그에게 열었던 마음을 다시금 단단히 잠궜고 그에게 상처 받은 만큼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더 큰 상처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상처 받고 상처를 주며, 하지만 처음으로 받았던 그 사랑의 감동, 희열을 나는 잊을 수 없었고 그 큰 감동만큼 나에게 아픈 상처를 주는 그를 떠날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그가 없으면, 나는 그런 사랑을 받지 못 할테니까..
나는 여태껏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상처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그가 정말로 나에게 실망해 나를 영원히 떠나버렸다면, 정말 슬프게도 자신의 자존감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세상이 흔히 말하는 진리와 상관없이 나의 자존감은 아마 또 다시 오랫동안 회복해야 할만큼 추락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지,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라 그런지 왠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사람이 자존감을 쌓기 위해서는,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행해야 하는 것이 타인의 나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토록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몸무림치는 것도 그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나의 경험으로는 나의 자존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조건 없는' 타인의 사랑이 필요하다.
내가 미친 듯 노력해서 얻은 사랑은 나의 자존감에 별 영향을 주지 못 한다. 나의 본성을 드러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이 들 때, 그게 비록 단 한명일지라도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니까.
그래서 어린 시절 부모의 무조건적인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이의 거의 일생에 걸친 자존감을 형성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틀이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자존감의 기본 틀이 형성되지 못 했더라도 나중에 커서 자신의 노력으로 다시금 형성할 수 있겠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 때도 온전히 나는 소중한 존재야 하는 자기 인식만으로는 부족하고 언제가 되었든 남녀의 사랑이든 진정한 우정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조건 없는' 타인의 사랑을 받는 그 순간 어릴 때 형성되지 못 했던 자존감의 틀을 다시금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
그래서 타인과의 교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는 나는 나의 이런 경험으로 보아
사람의 사람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 얼마나 그 사람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절실히 느끼고 내가 비록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나의 진심어린 관심과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이 그 사람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나의 작은 진심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힘을 줄 수 있는지를 느꼈기에
아직도 어떻게 사람과 교류해야 할지 모르는 비록 바보같은 어른아이인 나이지만 길거리에서 아는 아주머니를 만나더라도 그저 내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한 가식적인 관심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정말 작은 안부라도 진심어린 관심을 가지려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그러한 시도는 나의 의미없어 보이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나의 인생도 조금씩 푸른 빛으로 변하고 있는 듯 하다.
인생이 회색빛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내가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회색빛의 안경을 쓰게 되어서일 가능성이 많다.
나는 나에게 그런 안경이 씌워진지도 몰랐고
나에게는 회색빛으로 보였기에 세상은 회색빛이야.
라고 진지하게 믿었던 것 뿐이다.
회색빛으로 보였다고 해서,
회색빛으로 세상을 바라본 나를 탓할 것은 없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니까.
나에게는 그게 진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인식했으면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회색빛의 안경이 씌워져 있었음을.
그리고 그 안경은
언제든 내 손으로 벗을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