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결국은 어릴 때 관심 가졌던 것으로 돌아갑니다. 아주 희안합니다.”
나는 어릴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빠의 부재, 미용실로 항상 바쁘신 엄마, 나이 차이가 나서 학교에 오래 가있는 언니라는 환경, 또 없는 친구....라는 결정적 환경으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책을 읽어줄 시간이 없었던 엄마는 테이프가 딸린 명작그림책을 사주셨고, 홀로 쇼파에 누워 그 테이프를 들으며 책을 보곤 했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 상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나한테 즐거움을 안겨주거나 내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만들지는 못한 것 같다.
엄마의 말씀으론 내가 잘 때 내 가방을 열어보면 거기에 글짓기 상장이 나오곤 했다고 한다.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다.
그때도 외롭고,(아빠도 없고 엄마도 언니도, 결정적으로 친구가 없는..)슬픈 적이 많았기에 글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종이에 옮겼을 뿐인데 뼈다귀(상장)를 받은 것이다..
중학교 때 내 글이 교지에 실린 후로 글을 써본 적 없다. 이십년이 지나 첫째 아이를 낳은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 출산후기를 올리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책 출간까지 준비하고 있다.
행복하다.
내가 외롭고, 아직도 이유 없이 슬프거나 분노 같은 것이 올라올 때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평안하다.
나는 내일 죽는다고 해도 오늘 글로 내 마음을 남길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글로 마음을 보여줄 것이고, 글로 서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인류 공통의 정신과)연결되고 싶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 도움이 되는 방식은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내가 세상 물정에 눈이 어둡고,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었으며,
겉으론 웃지만 사실은 사람들을 경계하며,
늘 마음 속에서 갈팡질팡 방황한다는 것을
만인이 알아버린다 해도,
슬프게도 (다행스럽게도),
만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