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란 책을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나의 인생에서 크게 지배하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졌으며 하나의 풀리지 않을 큰 의문을 남겨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이런 성격은 어린 시절과 화목하지 못했던 가정환경에서 비롯됐으며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나 나아가 범죄자들은 분명히 화목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그런 심리 상태가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믿음은 나의 인생 태도와 나의 단점을 합리화시켜주었다. 예를 들어 내가 내성적인 것은 바쁘셨던 엄마 때문에 내가 어릴 때 애착형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매사에 불안하고 자주 우울에 빠지는 것은 화목하지 못했던 부모님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굳건히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모두 원치 않았던 가정환경 탓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믿음 속에서 나는 그저 피해자일 뿐이었다. 나의 믿음 속에서 내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그것은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은 영원히 내 탓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나를 지배해왔던 고정관념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첫째, 누가 봐도 지극히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사람도 범죄자가 될 정도로 큰 정신적 불행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분명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며 그래서 고난을 이겨낼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둘째,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상대방은 가장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쨰, 아무리 큰 사랑을 주어도 상대방은 그 사랑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인생은 예측 불가하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운이 인생을 지배하는 힘이 생각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저자의 아들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순탄하게 살아오다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친구로 인해 살인범이 되고 자살에 이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보면 괴롭힘을 당한 것과 나쁜 길로 인도한 친구를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다른 학교에 갔다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 친구를 안 만났다면 살인과 자살이라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초등학교 때 반 남자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고, 중학교 때 친구와 나쁜 짓을 저지른 적도 있다. (다행히도 발각됐기에 더 이상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다. 나를 잡아준 그 분에게 감사한다. 절이라도 해야한다. 이것도 순전히 운이다) 하지만 그 후로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왔으며 지금 순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데 (정답을 제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운이 지배하는 힘이 컸다는 것을 제외하면 내가 생각한 원인은 이런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아들을 완전 무결점한 인간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에게 악한 면이 존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은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선한 인간이며 행복한 인간이라고 (자신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들의 어두운 면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보였다고 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의 아들은 자신의 엄마에게는 엄마가 생각하는 선한 아들, 행복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이것은 연기된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아들 안에는 분명 선한 마음, 화목한 가정에서 느끼는 행복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자신의 어두운 모습은 자신의 친구만이 인정해주었다. 그 친구에게는 자신의 분노와 우울함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악한 면을 인정해준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아들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위로가 되는 해로운 줄은 알지만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던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선한 면과 악한 면이 있으며
선한 면만 강조한다고 악한 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악한 사람이라고 해서 선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면에 대해서 인정해주어야 하며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악한 면이 있다는 것만 인정해 주어도 악한 면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기대어 결국 악한 행동을 하여 자신과 타인을 파멸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은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 라는 말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른다. 속으로는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며 그 사람 앞에서는 좋은 면만 보여야만 할 것 같다. 나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그 사람이 실망할까봐 두렵다. 하지만 나의 좋지 않은 모습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짐을 한층 덜게 된다. (그 사람이 나쁜 길로 인도하는 악인이라면 정말 큰일일것이다. 다행히도 내 인생의 운은 좋았다)
나에게 이런 선한 면, 악한 면이 모두 존재하듯이
타인이 내가 생각하기에 악한 면을 언뜻 보여준다 해도 섣불리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진짜 악인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감이 온다. 멀리하는게 좋을 것이다...)
내 자신에게도, 또 타인에게도 조금은 포용력을 더 가지면 좋겠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그 사실만 알아도 모두가 조금은 평화로워질 것 같다.
좋은 사람 컴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사람이 되려하는게 더 현실적일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더 매력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