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영문을 모를수록 고통스럽다”
정말 맞는 말인거 같다.
어렸을 때는, 모든 첫 경험은 영문을 몰랐기에 더 고통스러웠다.
소설을 읽고 어울리지도 않는 예술적 그림을 보는 것도 이제는 더이상 영문을 모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의, 나의 난해함을 이해하여 덜 고통스럽고 싶다.
소설이 그런 면에서 좋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다른 이의 감정을 추측할 뿐이지 확실히 해부할 수 없고 그의 감정, 그에 대한 내 감정을 그저 막연히 느끼기만 할뿐, 정확히 해석할 수 없기에, 영문을 모르기에 더 고통스럽다. 그게 어찌된 영문인지 조금 더 확실해진다면 내 고통이 조금은 덜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혹은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감정은 아마도 이런 연유에서 나왔을 것이고, 이런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니(그게 확실치는 않더라도) 더이상 영문을 모른 채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분노하고, 자신만의 동굴에 갇혀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첫째 목적은 나의 치유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써 단 한명이라도 도움을 받는 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이제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사람들간의 연결감이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같이 있어도 귀찮지 않은, 좀 부담스럽게 들릴지는 몰라도 ‘영혼의 교류’가 가능한 관계다.
내가 평화로워져야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