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웃고 또 왠만하면 사람들에게 다 맞추려고 하는 스타일이라서 진짜 너무(?) 성격이 좋은 사람으로 평가 받은 적도 있고 (내가 도대체 얼마나 연기를 했길래...)
아직도 내 행복을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는 좋은 게 좋다는 주의인데 내 얘기만 들어보면 대부분이 나를 좋아할 거 같지만 이러한 나도 적들이 꽤 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거의 한가지로 통일된다.
‘매우 열심히 사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나를 굉장히 못마땅해하고 눈에 거슬려 한다는 것을 나는 살면서 발견했다..
나는 살면서 어떤 일에서든 필사적으로 죽기 살기로 노력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국민학교)때 수학(산수?)은 부끄럽지만 양가집 규수였다(대부분 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본 기억이 없다. 그냥 그것은 나한테는 안 맞아 하며 너무나 쉽게 포기하는 스타일이다.
아마 이렇게 노력 없이 인생을 거저 먹으려고 하는 성향은 아마도 우리 한량 아버지를 닮았을 것이다. 게으름도 유전이라 했다. 난 분명 내가 싫어하는 내 아버지를 닮았다.
이렇게 한량으로 살아도 남들 하는 건 다 하며 인생을 무난하게 살아왔던 것은 고맙게도 항상 서포트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불쌍한(?)우리 엄마와 남편이다.
나는 사실 나의 화목하지 못 했던 가정환경 때문에 내가 많이 피해를 보고 살았다고 억울해했으나 나중에 인생을 돌아보니 나처럼 편히 산 사람도 드물 것 같았다. (아마 하는 일 없이 한량으로 사니 더더욱 생각이 많아져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가혹한 운명으로 나같은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나같은 여자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책임져 준 그 두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길바닥에 나앉았을 것이다.
황상민의 성격 상담소라는 책을 보니 나는 로맨티시스트형이라고 나왔는데 그 스타일은 혼자서는 딱 길바닥에 나앉기 좋은 스타일이라고 딱 정확하게 찝어주었다.
아무튼 노력하지 않고 되는 대로 인연 따라 편하게 살아왔으나 어릴 때 다 액땜을 한건지 뭔지 어찌됐건 내 예상보다 내가 더 잘 풀리는 것 같다.
나는 상사에게 혼나고 나서도 유유히 냉장고에 가서 나의 소중한 우유를 꺼내 먹으며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고 (너는 우유가 넘어가냐고 상사한테 한소리 들었지만)
나를 거슬리게 생각하는 상사와 사이가 안 좋아진 후 왠지 반항심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부러 식당에 가 아침을 아주 천천히 즐기며 먹은 뒤에 한시간 정도 회사에 늦게 가 그 상사를 더 열받게 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내가 착한 척 하면서 은근히 사람 열받게 하는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다)
김구라가 가장 처리하기 힘든 사람이 ‘착한데 일 못 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상사에게 매일같이 혼나고 일 처리를 못 하는 무능력한 사원이었는데 글쓰기 세상에서는 나도 아주 무능력하지만은 않는 것 같아 나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다.
여기만이 나를 받아준다.
여기는 우리 엄마와 남편 같은 존재다.
나는 내가 열심히 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한없이 너그러운데 매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에게 하듯이 아주 깐깐하고 완벽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완벽과는 거리가 아주 먼 나를,노력과는 담을 쌓은 나를 보고 치를 떨며(?)못마땅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소리 할라치면 또 착한 척 하며 세상 환한 미소를 지으니 자기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내가 더 싫어지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동료와는 아주 잘 지내지만 상사와는 거의 원수처럼 지냈고 결혼을 하니 또 시월드에는 아주 거대한 시어머니라는 상사가 있었고 역시나 매우 열심히 살아오신 시월드 상사께서는 이 굴러들어온 한국산 한량이 맘에 들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한다.
나같은 사람은 솔직히 받아주기가 힘들 것이다.
글쓰기 세상과 같은 천국이 아닌 현실에서는 말이다.
이렇게 한량 기질을 버리지 못 하고 매우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나도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 천성인지 유전인지 모를 엄청난 몸에 밴 게으름은 잘 고쳐지지 않았고 솔직히 고치고 싶지도 않다. (고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법륜 스님의 강연에서 바로 이거야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이야기인즉슨,
법륜 스님이 예전에 절에서 예전에 거지 생활을 하던 어떤 사람과 같이 둘이 일을 하고 있는데, 똥양동이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왔다갔다 하는데 법륜스님은 양동이를 가득 채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최선을 다해 일을 하는데 그 거지 생활을 했던 사람은 양동이에 아주 약간만 찰랑거리게 채워 아주 여유있게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다.
법륜 스님 왈:
“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뭐냐?
일을 하려면 좀 열심히 해야지!”
거지 생활 하던 사람 왈:
“너는 모른다. 주인들은 원래 아랫사람이 쉬는 꼴을 못 봐. 조금씩 끊임없이 일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 일 열심히 하다 내 몸 축나면 나만 손해지.”
법륜 스님은 나중에 지나고 보니 그 거지의 말이 정말 인생의 큰 진리를 담은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넘치지 않게 자기 몸 축내지 않으면서 조금씩 끊임없이.. >
이것이 바로 강자들이 가득한 이 바쁜 세상에서 한량이 살아남는 법이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을 찾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제일 행복한지는 자신이 아닌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후회없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