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엄마가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서 술을 드시고는 악을 쓰고 그런 와중에서 나는 아빠한테 맞은 적은 있지만 또 엄청 많지는 않고.
아빠는 내가 끓인 커피가 언니가 끓인 커피보다 맛있다고 했다. 아빠 등을 주물러줬는지 밟아달라고 했는지 아빠는 좋아하셨던 것 같다.
아빠는 예술적 감성이 있으셨던 것 같다. 연애때 엄마한테 시도 쓰고, 옷도 잘 차려입으시고, 물고기 화초 키우기 다 잘하셨던 것 같다.
엄마가 원하는 만큼 능력이 없으셨다. 지금의 나처럼 그저 노는 것만 좋아하셨던 것이다. 근데 지금의 나도 신랑 등처먹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처럼 오래 기대고 살았다면 우리 엄마같으면 진작 아빠를 내쳤을 것이다. 우리 신랑은 그러지 않고 있다.
엄마는 조금 더 부지런한 남편을 만나야 했고 어쩌면 아빠도 더 아빠를 봐주는 알아주는 아내를 만났다면 그렇게 자격지심이 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엄마 말로는 (언니 말로도) 아빠가 물 떠오지 않는다고 내 따귀를 때렸다는데 난 기억에 전혀 없다.
기억 나는 것은 내가 그 이름도 무서운 중 2때 모닝글로리에서 펜을 과감하게 엄청 많이 훔치(뽀리)다가 아빠한테 연락이 갔는데 아빠가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혼도 내지 않고 조용히 차를 운전해 날 집으로 데려가준 일이다. 그 후로 아빠는 한번도 나에게 그 일을 언급한 적이 없다. (반전은 엄마한테 그 일을 언급했다고 한다. 내가 그때 그렇게 봐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런 식으로 ㅎㅎ 암튼..)
내가 보니 나는 외도만 안 한다 뿐이지(상상으론 별짓 다한다) 아빠보다 더 게으르고 더 재능도 없고 아빠만큼의 외모도 안 된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이렇게나 멀쩡히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할정도로 신랑 등처먹으며 잘 사는 것이다.
어릴 때 액땜 한건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책에서 저자는 어릴 때부터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의 허무함에 대해서 저자 아버지가 일깨워주었고 그 후로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답을 찾았다.
제목에서도 느낌이 오듯이, 우리가 진실이라고 의심치 않았던 것조차 진실이 아닐 수 있고 진리라고 믿었던 것도 원래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더 당황스러워진다. 그럼 뭘 붙잡고 사나.
너가 있으면 오늘 내가 살만하니까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없어지면 너는 아직 안되니까 우리는 그저 무얼 하지 않아도 사실 존재하고 있다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의식하지는 못해도, 너가 여기에 있다는 것으로, 내가 여기 너 옆에 있다는 것으로, 아니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를 준다.
그 상대가 자식이 됐든 동물이 됐든 내 밥과 몸을 원하는 남편(너)이 됐든 남편의 돈을 원하는 아내(나)가 됐든 우리는 이래서 또 오늘 하루를 서로가 있어서 좋든 싫든 살게 되는 것이다.
유품 정리사 저자의 책을 보면 정말 정신이 번뜩 든다. 내가 운이 없었으면 혹시 저런 운명을 맞이할지도 몰랐겠지. 자살로 혹은 고독사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여러가지 행동을 그 마지막에 보여줬던 이해할 수 없는 무서운 싫은 모습들에서 난 내 모습을 보았다. 그러니 나는 너가 없었으면 오늘의 내가 (그나마 별로라고 생각하는 오늘의 나마저도!!!!!) 없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선 내가 막 죽으면 누군가가 나를 치워줘야 한다. 피해다. 누군가가 발견해주어야 한다. 충격을 주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죄책감을 주는 것이다. 내가 좀 더 잘해줬더라면...
그냥 살자!!!!!! 어떻게든 주어진 그 날까지 살면 되는 것이다!!!! 목표는 그냥 살다가 나중에 좀 더 힘이 생기면 잘 사는 경지까지 가는 것이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오늘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고(요리하기, 립스틱 바르기, 눈썹 그리기, 스트레칭 하기, 아이 칭찬해주기, 엄마한테 안부문자 보내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밤이 되면 자면 되는 것이다!!!!!
울상으로 하루를 보냈든 웃으며 보냈든 어쨌든 하루를 보냈고 이만큼 살았고 살 때까지 너무 심한 충격과 피해를 안 주면 그걸로 나쁘지 않은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