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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가스포어 megaspore Nov 10. 2022

와인잔은 날씬하다

식당에서 점심 먹는데 레드와인을 시켜봤다. 화이트 와인은 색깔이 없어서 왠지 분위기가 안 나는 것 같다. 와인잔의 날씬한 잔 아랫부분을 잡고 마셔보는데(후르릅), 쓰다... 뱃속까지..


누가 이런 날씬한 손잡이(?) 아랫부분이 있는 잔을 만들었고 누가 여기에 포도주를 따라서 마시기 시작했을까? 날씬한 아랫부분을 잡는 순간(손가락을 오무리는 순간)난 이미 우아해진 느낌이다. 이 순간만큼은 뭔가 마음이 정갈해진 느낌이다. 이 순간을 위해 그 모든 것이 있었나..(풉)


어떤 사람이 이렇게 불편하게 옆으로 달린 손잡이가 아닌 아래가 날씬한 잔을 만들었는지.. 그는 이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만들었겠지.


불편하다. 솔직히 뭉뚝한 불투명한 물잔에 따라서 먹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왠지 이 불편한 동작을 하면서 우리는 뭔가 가다듬게 된다. 내 흐뜨려지는 마음가짐을. ‘나는 이 순간 이 빨갛고 날씬한 것을 마시고 있어. 내가 마실 때마다 찰랑찰랑 흔들리네’ 하며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평소 마시던 물잔에 마셨다면 우리는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 편함이란 그런 것이다. 너무 편하기에 집중하지 않게 되는 것. 집중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불편을 포함한다.


집중하는 느낌이 참 좋다. 오~ 쓰네 써~ 뱃속까지 쓰다~~ㅎㅎ 와인 테스팅 하는 사람들처럼 미묘한 감각을 느끼는 재주는 없어도 나도 나의 씀과 안 씀을 표현하면서 내가 좀 정교해진 느낌에 으쓱해진다.


편한 사람도 좋고 불편한 사람도 좋다.


서툴고 투박하면 투박한대로 예쁘고 정교하고 성숙하면 또 성숙한대로 아름답다.


우리의 인생은, 그리고 나를 봐주는 너는, 어떤 모습이든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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