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귀게 되는 결정적 순간이 있었다. 같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이 살포시 올라왔다. 손은 내 어깨에 이미 올라와있고, 아무 생각 없던 나는 그때부터 머리가 급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몸은 혹시나 그 손을 떨어뜨릴새라 망부석처럼 굳어있었다)
그가 손을 올리기 전까지는 나는 우리가 이런 사이로 발전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은 꽤 매력적인 남자였고 난 내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다. 손이 올려진 채 굳어서 (그대로 멈춰라~) 이 손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대로 그의 손이 올려진 채로 호수를 계속 말없이 바라보았다..
난 그 순간 이미 그와 함께 하는 오늘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서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전했고 나는 받아들인 것이다.
결혼 후 발견하게 된 작은 수첩에서 남편이 나에게 고백하던 날에 꽃 전달하기 등등 이런 계획들을(쓸 필요도 없는 간단한 계획들을) 적어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손 올리는 것을 내가 받아들인 후에 그의 계획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순간엔 결정적인 순간인지 몰랐는데 지나고보니 결정적 순간이었던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친언니의 원형 탈모 때문에 집에만 있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아빠의 통화내용을 듣게 되어 이혼을 간절히 꿈꿨던 엄마가 아빠의 외도증거를 빌미로 이혼을 하시게 된 일 같은 것)
나의 매일이 똑같은 것처럼 느껴질 땐 나의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다 결정적인 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와 밥 먹는 이 순간이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꿀지 모르는 그 결정적인 순간이었으면 좋겠고, 우리 사이가 어색하지만 그래도 너에게 웃음을 보여준 그 짧은 순간이 우리의 뒤의 모든 운명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나에겐 내 인생이 너무 소중하기에, 매순간이 결정적 순간이기에, 그래서 나는 혹시나 중요한 것을 떨어뜨릴 새라 그렇게 오랜시간 망부석처럼 굳어 있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