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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가스포어 megaspore Mar 22. 2023

괴로운 것보다는 외로운 게 낫다

대학교 때 부모님께서 두번째 이혼을 하셨다.


첫번째 이혼은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데 아버지께서 다시 잘 살아보자고 종종 찾아와 엄마와 우리 두딸들에게 잘 해주시는 바람에 맘이 약해진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 다시 아버지와 재결합.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깨달으신 후 내가 대학교 때 두번째 이혼을 하시고 현재는 홀로 살고 계시다.
(어머니의 명언: 괴로운 것보다는 외로운 게 낫다)


엄마를 집안의 '기둥'으로 여기신 아버지는 엄마와 헤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엄마와 우리 두 딸들은 거의 목숨(?)을 걸고 이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는 각오로 이혼을 밀어붙였고 결국 성공을 거두긴 했으나 그 과정이 좀 험난했다. (경찰까지 집에 옴)


아무튼 그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나는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그때부터 종종 꿈을 꾸면 꼭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버릇이 생겼다.


꿈에는 아버지가 나올 때도 있고 뭔가에 쫒기기도 하는데 나는 그 무서운 것을 피하기 위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고 그 비명으로 인해 잠에서 겨우 깨곤 했다. (아이러니는 꿈에서 아버지가 나와 비명을 지르며 겨우 꿈에서 깼는데 나의 비명 소리를 듣고 놀라 잠에서 깬 아버지가 나에게 무슨 일이냐며 달려 오셨다는....)


그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는 버릇은 내 생각보다 더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아마도 5년 이상이 지나서야 완전히 사라진 듯 하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시작되어 남편과 결혼 후에까지 이어졌는데 처음에는 남편이 무슨 꿈을 꿨길래 그러냐고 해서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정신 분열증처럼 보일 것 같아 "귀신 꿈을 꿨어..."라고 속이곤 했다. (내가 어찌나 크게 비명을 질러댔는지 언제나 남편이 나보다 더 식겁하곤 했다. 불쌍한 남의 편..)


그런데 그렇게 잠이 깨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남편은 귀신 꿈을 꿨다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고 무슨 꿈인지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이혼 후부터 생긴 버릇이고 종종 이런다고 털어 놓았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편은 이러한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눈치였고 나는 종종 이렇게 깨어나는 내 스스로가 부끄럽고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나의 비밀을 털어놓고 나니 마음의 짐을 한결 덜은 느낌이었다.


남편도 우리 집안이 화목하지 못한 집안이었고 결국 이혼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남편 앞에서만큼은 애교도 부리고 사랑스러운 여자이고 싶었는데(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남편에게만큼은 종종 부리곤 했다)


사랑스럽기는 커녕 이런 못난 모습을, 불쌍하고 추한(?)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줘야 하니 참으로 슬펐다.(나는 감출 수 있었으면 끝까지 감췄을 것이다. 하지만 꿈은 너무나 솔직했기에 나의 본 모습을 감추기란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나의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는지 나는 남편을 더 신뢰하게 되었고 남편은 이런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며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영원히 갈 것만 같아 무서웠던 이 버릇은 남편에게 고백 후 점점 횟수가 줄어들더니 남편과 결혼 후 일이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도 자취를 감춰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무의식에 숨겨진 나의 공포.. 수치심 등은 숨기면 숨길수록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고 그럴수록 무의식은 어떻게 해서든 그의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려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그리하여 감추려는 나의 의식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무의식은 서로 충돌하여 그토록 나를 힘들게 만들었나보다.


이제 자취를 감춰버린 나의 반갑지 않은 옛 친구..

왜 자취를 감췄을까.


나의 비밀을 알고도 나를 받아들여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그 사랑에, 그도 더이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일까.

자신의 존재가 드러났고 그 존재 자체로도 온전히 받아들여졌으니 말이다.


상처는 축축한 빨래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양지에 탁 하고 드러내고 말려 놓으면
축축했던 빨래가 보송하게 말라서 산뜻한 향기가 나지만, 음지에 숨겨 놓으면 처음에는 그저 축축할 뿐이었던 빨래는 점점 악취가 심해지고 곰팡이가 생겨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버린다.


쨍쨍한 햇빛에 그냥 탁 하고 드러내놓자.

막상 드러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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