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관하여
엄마가 아빠랑 두번째로 헤어지려고 결심하셨을 때, 우리 세모녀는 뜬금없이 피지로 이민 갈 생각을 했다. 아빠가 이혼하자고 하면 난리 칠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감히 이혼 시도는 못 하고 아빠 몰래 다른 나라로 도망을 치려 한 것인데, 오래 키우던 강아지 뽀미를 같이 데려갈 수는 없다고 이민 관련 담당자께서 말씀하셔서 이민은 포기했다. 엄마는 평생을 미용실을 하셨는데 어떻게 세모녀가 뜬금없이 피지로 이민 갈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나의 언니는 피지로 가면 무슨 악세사리 같은 것을 만들어 팔며 돈을 벌 것이라고 했고 나는 대학에 보내준다고 했다..(나는 그당시 한국에서 대학 휴학 중)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얼토당토 않은 계획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우리 세모녀가 아빠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인 나머지 아빠와 헤어지는 방법은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키우던 강아지를 두고 갈 수는 없어 용기를 내어 이혼 시도를 해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아빠가 죽는다며 칼을 빼드는 등, 그래서 경찰까지 부르기도 했지만, 아빠는 우리의 예상보다는 순순히 이혼을 해주셨고(아빠가 다른 여자가 생겨서 그걸 빌미로 이혼 요구 후 아빠에게 위자료를 주고 이혼함) 이혼하신지 15년 정도 흘렀는데 아빠는 단 한번도 엄마에게 연락하거나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우리 예상보다 의외로 순순히 이혼해준 아빠,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생판 모르는 나라로 도망치려고 했었다니... 또 모르지, 죽겠다며 칼을 빼 드셨을 때 정말 무슨 사건이 났었으면 차라리 이민 가는 게 나았을지도. 아빠랑 이혼 후 언니도 결혼하고, 나도 중국 유학 가서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그 후로 모든 게 여느 평범한 사람처럼 나도 살게 되었다.
아빠랑 이혼 시도 했을 땐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식으로 우리 세모녀 다 비장했던 것 같다. 죽기 아니면 살기가 아니었다면 시도를 못 했을 것 같다. 이 기회가 아니면 이런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두려움이란 뭘까? 두려움은 꼭 이겨내야 하는 대상은 아닌데도 우리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하는 것도 두렵지만 이대로 사는 것이 더 두렵기 때문에? 막상 물에 빠져버리면 허우적 대긴 하더라도 막상 할 만 하니까?
지금 두려움을 갖고 있는 그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려는 것일까? 의외로 막상 해보면 순순히 우리 예상보다는 금방 맥없이 꺽이는 두려움일까? 해보지 않고서야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