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두 마리를 보면 무슨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나는 강가에서 엄마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에게 '툭-'하고 치면서 '물마셔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넛지 Nudge: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과거에 한차례 한국에서 각광받았던 '책'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읽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의외에 계기로 읽기 시작했다.
팀장님의 UX 추천 도서였다.
뭔가 알려지지 않은, UX 관련 '비급서'라고 하기엔 대중 교양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지만 다 읽지는 못했다. 다만 몇 가지 할 말이 생겼다.
1. 굉장히 유용하다.
이 글의 제목처럼 디자이너가 읽기에 좋은 정보들이 가득하다. 행동경제학, 심리학적인 개념을 실례를 통해서 얘기하고 주장한다. 판례집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2. 좀 재미가 없다.
너무나 좋은 정보가 많지만 가감 없이 한 권에 모두 때려 박은 듯하다.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점에서 '판례집' 예시가 더 어울린다. 그리고 각 챕터가 물 흐르듯 이어지지 않는다. 개념-사례, 개념-사례의 반복이다.
그럼에도 '디자이너의 지침서'라고 생각한 이유는 디자이너라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부분들을 짚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디자인을 할 때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등을 말이다.
선택 설계자와 비합리적인 사람들
'선택 설계자'는 넛지의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택'은 사람들이 하는 행위의 총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한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냐 라떼냐, 옷가게에서 청바지냐, 면바지냐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한다. 문제는 우리의 선택은 어떤 맥락(Context)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 맥락이 어떠냐에 따라 우리의 선택도 달라진다. 카페에 있는 메뉴판이 어떠냐에 따라, 옷가게에 디피된 옷들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선택 설계자는 꼭 '디자이너'라는 직함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카페에 메뉴판을 만드는 사람도, 옷가게에 옷을 디피하는 사람도 누구든 선택 설계자가 될 수 있다. 왜냐면 우리는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어떤 맥락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은 맥락에 영향을 받아 선택을 하고, 그 맥락을 만드는 누구나 선택 설계자가 될 수 있다'는 명제는 한 가지 토대 위에서 세워져 있다.
그것은 '인간은 자주 비합리적이다'는 토대다. 이 주장은 심리학자인 카너먼(Kahneman)과 프레더릭(Fredrickson)이 밝혀낸 인간의 인지 구조에 근거한다. 우리는 대개 2가지 경로로 외부 사물을 받아 들인다. 하나는 직관적인 '시스템 1'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심사숙고하는 '시스템 2'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2가지 시스템으로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우리는 살면서 모든 선택을 수학 문제 풀듯이 심사숙고하지 않고 그냥(직관적으로) 선택할 때도 많다.
당신이 지하철을 환승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환승 통로의 터널을 돌았을 때
원래 있던 회색 계단이 아닌 특이한 것이 설치되어 있다면, 평소터럼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도 있지만 소리 나는 피아노스러운 계단을 이용할지도 모른다. 책에선 이밖에도 손실기피, 현상유지 편향, 프레이밍 등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인지/행동 편향된 사례를 제시한다.
넛지의 저자는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맥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 설계 자체가 삶에 이로운 방향으로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설계하라는 걸까?
설계시 고려사항
넛지에서 말하는 설계시 염두해야 하는 것을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1. 자극-반응 일치성
우리는 상식, 고정 관념화된 자극과 의미들이 있다. 신호등의 빨간불과 초록불은 그 모양을 보지 않아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이는 일상 생활은 물론이고 인터넷이나 어플리케이션에도 유효하다. '돋보기'아이콘, '톱니바퀴'모양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런 UI를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통용되는 상징이나 아이콘을 고려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2. 디폴트의 중요성
손대지 않은 기본값은 아주 강력하다. 지금 쓰는 핸드폰의 벨소리를 바꾼 적이 있는가? 나는 있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디폴트는 가장 저항이 적은 경로로 디자인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배송지 정보를 한번 입력하면, 이후 주문엔 디폴트로 배송지 정보가 입력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선택을 미리 해놓는 것도 방법이고 아예 선택을 요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황에 맞는 디폴트 값을 잡아야 한다.
3. 오류 예상
좋은 설계는 사용자의 실수를 미리 예상해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경로로 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은 결국 처음 만들때 사람들이 오류를 범할 만한 것들을 고려해야만 가능하다.
4. 적절한 피드백
사용자에게 피드백을 줘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오류 메시지를 띄우라는 것과는 다르다. 지금 잘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는 중이라는 긍정적 피드백을, 문제가 있다면 이를 알리는 부정적 피드백 그리고 해결 방법까지 알려줘야 한다. 피드백이 사소한 듯하지만, 단순한 프로세스 진행뿐 아니라 '전문가가 되는 과정'(공교롭게도 이것도 카네만의 연구결과다)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짧은 글을 통해 넛지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내가 읽은 100몇 페이지조차 다 담지 못했다) 맛보기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 사람 혹은 그런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사람은 옆에 두고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