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그레이 Feb 06. 2024

옥순이 쏘아 올린 'T vs F'논쟁

MBTI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 낳은 갈등기 

MBTI 유행이 조금 잠잠해지는가 싶었는데,  

'나는 솔로18기'에 출연 중인 옥순이 다시금 불을 지핀 듯하다.

인스타 게시물과 릴스에 해당 장면이 수 없이 재생산되고, 영상마다 달려있는 가열찬 댓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디 가서 'MBTI 전문가'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MBTI를 한국에 정식으로 도입한 기관(한국 MBTI연구소)에서 정규 과정을 두 차례 이수하고,  

최종 과제에 통과 후 결과적으로 공인된 검사지구매하고, 해석할 있는 최소한의 자격(=MBTI 보수)을 확보한 입장에서는 부분에 대해 덧붙일 말이 있다.

아니 어쩌면 '하소연'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MBTI가 측정하는 것은 '선호경향'임을 재차 강조한다.

'선호한다'라는 뜻은 '짜장과 짬뽕 중에 짜장을 좀 더 자주 시켜 먹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요인이 세 가지가 있다.




우선 '나에 대해 내가 응답한다'는 것이다.  

검사 용어로는 '자기 보고식'이라고 한다.

이 말은 피검자의 기분, 상황, 컨디션 등에 따라 답변의 방향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결과의 절대적인 신뢰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문항에 대한 응답으로 '현재의 나'가 아닌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를 기준으로 답변하는 오류를 범한다.  


두 번째, MBTI는 바뀔 수 있다. 

쉽게 말해 나이, 직업, 가족관계, 경험 등의 수많은 요인으로 인해 '해당 시점 안에서의 나'의 

선호경향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예컨대 취업 전까지는 'P(유연성)' 선호도가 분명했던 사람도 회사의 구성원이 된 이후에 'J(실행력)' 성향이 더 강해질 수 있다.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영업직에 종사할 때만 해도 나의 MBTI는 스티브잡스와 같은 'ENTJ'였다.  

그런데 프리랜서가 되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지금은 'ISTJ'로 바뀌었다.


세 번째, MBTI는 '기질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기질은 '타고난 성향'을 의미한다. 

부모님으로부터의 유전적으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데 MBTI는 '뭐가 더 좋아? 어떤 쪽이 네 마음이 더 편해?'의 개념이기 때문에 연령, 직업, 스트레스 정도, 대인관계 등의 복합적인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주장에 대한 적절한 논거가 될 수 없다.         




여타의 성격유형검사가 그러하듯 MBTI 또한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가장 주된 목적은 '자기 이해에 기반한 적합한 진로 설정'이다. 

예컨대, ENTJ의 사람은 다음과 같은 환경에서 직업적 만족도가 높고,  조직의 성과 창출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60년이 넘는 연구와 사례 데이터에 근거해 '확률적'으로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E - 업무적으로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일.

N - 업무 수행 과정에서의 '가능성'과 '비전'을 중요하게 고려할 수 있는 일.

T - 논리적인 사고에 따른 합리적인 결정이 가능한 일.

J -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빠른 계획과 실행을 할 수 있는 일.


다른 목적은 타인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함이다. 

나와 다른 다양한 성격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저 사람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저런 특징을 가진 사람도 존재하는구나..'라고 생각을 전환시킬 있다. 

쉬운 예로 'F'성향의 직원이 평소에 업무 지적을 많이 해서 자신을 힘들게 한 'T'성향의 상사가 지닌 특성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이전보다 더 구체적인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보고 내용을 준비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돌아와서 옥순이 집착하는 'F'이야기를 해보자.

'F는 공감능력이 있고, T는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치환시키는 사고는 그야말로 대단한 오해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F=좋은 거, T=나쁜 거'와 같은 가치 판단이 전제되어 있는데 

MBTI를 포함한 어떠한 성격유형 검사도 각각의 특성을 설명할 뿐, 좋고 나쁨을 측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리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T 중에는 누구도 '너 F야?'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는 듯한데,

F 중에서는 유난히 '너 T야?'라며 자신이 F유형인 것에 대한 은근한 우월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너는 차가운 사람이구나. 나는 따뜻한 사람인데'라는 걸 내포하고 있듯이 말이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내가 이수한 총 32시간의 관련 교육과 과제로 작성한 3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 

그리고 지금 책장에 꽂혀있는 13인치 노트북 사이즈의 500페이지가 넘는 MBTI해석집 어디에도

F유형을 설명하는 말로 '공감능력이 있다' 내지는 '공감능력이 탁월하다'라는 표현은 한 줄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오히려 F기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감정기능에 의해 판단을 하는 사람은(=F성향) 

타인의 감정과 가치가 자신의 가치와 감정과 일치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감능력'이란,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나의 심리적 동질감'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체는 '타인'이고 객체가 '나 자신'이다. 

그런데 위의 설명에 따르면  MBTI에서 F유형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이나 가치를 상대가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성향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므로 진정한 의미의 공감능력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다. 




동생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근 화재 진압 과정에서 순직한 젊은 소방대원 소식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본 평소 극단의 F임을 자랑(?)하던 동생이 "말똥 한 눈"으로 말했다. 


"이런 거 보면 언니도 F인데.."


T인 나는 울고 있지만, F인 동생은 의아해했다. 

  


작가의 이전글 응급실 의료진을 향한 헌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