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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May 16. 2024

'형평성'에 가로막힌 '개성'

능력중심 채용에서 크게 간과되는 것

그 어렵다는 서류 합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다가올 면접을 생각하면 또다시 망망대해에 부유하는 돛단배 신세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몇 분 전까지 가뭄의 단비 같은 '서합(=서류합격)' 소식을 전하며

돌고래 발성으로 기뻐하던 학생의 목소리 톤이 급격히 가라앉는다.  


"선생님, 근데.. 면접 준비는 어떡하죠??"


학생은 이미 불합격 통지라도 받은 것처럼 걱정이 한 바가지다.






문득 과거 내가 받았던 면접 질문 몇 가지가 떠오른다.


"술은 얼마나 마셔요?"

"집이 먼데 출퇴근 가능하겠어요?"

"여자인데 영업 잘할 수 있겠어요?"


와 같은 지금으로부터 치면 '블라인드' 제보 감의 질문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던 때였다.


이러한 유형의 질문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면접관의 개인적 취향을 파악하는 것뿐이기에 사실상 사전 준비는 불가능했다.


예를 들면,  '술 좋아해요?'라고 묻는 이면에는 두 가지 상반되는 면접관의 취향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 팀은 술 자주 마시니까 같이 잘 마시면 좋겠는데..'와 같은 바람,  

다른 하나는 '술 좋아하면 업무에 지장 있는데...'와 같은 우려


따라서 어떤 답을 해야 '합격'에 가까워질지는

최종 통지를 받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입사 후 최종 목표가 어떻게 되나요?'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거였다.


"네, 00 기업에서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되겠습니다" (참으로 포부만 대단하던 시절이었다)


이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면접관이 되물었다.


"그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특별한 노력을 하고 있죠?"


어차피 특출 난 역량이랄 것도 없으니 '웃기기라도 하자'는 심정이었다.


"네, 골프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허를 찔린 듯한 답변에 면접관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 후 며칠 뒤, 나는 인사팀으로부터 '임원면접을 정말 잘 보셨더라고요~'라는 코멘트와 함께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의 면접 시스템에 이 상황을 대입하면 나의 탈락은 100% 자명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구체성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하는 탓이다.


이 처럼 그때는 통했고, 지금은 통하지 않는 데는

과거의 면접이 교수 재량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오픈북 시험'이었다면,

지금의 면접은 누가 채점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정답 시험'과 같기 때문이다.





'형평성'이 메인 테마인 '능력중심의 채용 문화'가 정착한 지도 어느덧 8~9년 차가 되었다.

현 시스템 안에서 행해지는 채용 전형의 특징은 모든 단계가 사전 계획과 준비에 따른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면접관 교육이 그것이다.

과거처럼 업무 삼매경에 빠진 관리자급 현직자에게 달려가 이력서 뭉치를 손에 쥐어주며, 

"차장님, 5분 뒤에 신입사원 면접 있습니다" 라고 다급히 불러내는 일은 더 이상 보기 힘들다.

(규모가 작은 기업은 예외로 하겠다.)


면접관으로 지정된 사람들은 면접 유형에 대한 이해부터 평가방식과 절차, 하면 안 되는 질문,

면접관의 태도와 유의사항까지 사전에 교육받는다.


때문에 면접장에서 면접관 개인의 '돌발행동'은 대부분 차단되며, 오로지 세분화된 평가 절차를 숙지하고, 항목별 기준에 따른  배점에 온 에너지를 집중할 뿐이다.


상대의 전술에 맞게 방어 태세를 갖춰야 하듯

기업에서 택하고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면접 유형에 발맞추려면  지원자의 면접 준비 과정도 복잡하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는 PT, 토론, 토의, 롤플레잉, BEI, AI, 외국어 등 다양한 면접 유형의 특징과 진행방식, 평가 요소를 최우선 파악해야 하고,  그걸 기준으로 나만의 답변을 일백 번 고쳐서 정리한 후, 전문가 컨설팅을 받고나서 반복 연습의 과정을 거친다.


취업하기 참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유다.




나 때의 주먹구구식의 면접 전형과 비교하면 절차가 까다롭기는 해도 면접관의 사견이 배제되니

이보다 더 공정하고, 합리적일 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취업 컨설팅을 업으로 삼고 있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이러한 면접 방식이

취준생 개개인의 개성과 매력을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어 아쉬움이 크다.


예를들면 내가 개별적으로 만나온 학생들은 모양이 제각각인 보석처럼 모두에게 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상술한 면접 시스템에서는 그런 빛을 발산시키기 어렵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는 '모양이 다르지 않은 보석'이기 때문이다.


모양이 똑같은 보석


이유인즉슨 모든 기업은 자체 '인재상'을 가지고 있고, 채용시 그에 '부합한 지원자'를 선별하고자 채용 절차를 기획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 키워드를 종합해보면  열 손 가락 내외로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통 잘하고, 도전 정신이 강하며, 협업이 가능한 인재



이는 마치 '착하고 좋은 사람'이 이상형인 것 처럼 막연하기 그지없다.

소프트 스킬의 본질이라 어쩔 수 없다쳐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을 '소통역량이 있다'라고 규정하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의지할 것은 1차원적인 사전적 정의에 매달려 자신을 끼워맞추려고 애쓰는 것 뿐이다.


이러하니 면접 답변에서 변별력을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

 




저울 값이 평평함을 의미하는 '형평성'


채용절차와 방식의 공정성에 지나치게 힘을 기울인 나머지 지원자의 개성마저 평준화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적어도 내가 보아온 바로는 겉으로는 모든 기업이 '맞춤형 인재'를 갈구하지만, 최종 결과는

대개 '가장 무난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듯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와서 면접관 개인의 기분과 취향에 의해 좌우되던 면접 방식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러한 면접관의 '독특한 취향' 덕분에 당시의 나 처럼 보잘없는 스펙에

돌발 언행을 서슴치 않는 '꽤 나대는 지원자'에게도 입사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반문하게 된다.  


기업의 성장은 결국 맨파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파워는 다름아닌 개개인의 '다양성'에서 나온다는 것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지금의 규격화된 평가 방식으로 과연 걸러낼 수 있을까?


'능력중심의 공정채용'이 크게 간과하고 있는 부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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