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과의 2박3일 첫 여행..

9년간 쌓아온 시간의 힘

by 미그레이

"이번 설 연휴, 너희 내외랑 우리해서 넷이 여행한번 떠나보면 어떨까?"

"너무 좋죠!"


어머니의 제안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역시 '진심'이기 때문이었다.

결혼 9년 동안, 시댁과는 명절, 생신과 같은 정기적인 행사 외에도 최소 두 달에 한 번은 모임을 가져왔다.

온라인으로 산 떡이나 과자를 전해드리기도 하고, 부모님 댁 근처 일정이 끝난 김에 들르기도 하고, 부모님이 궁금해하시는 것들을 해결해드리기도 했다. 출국 중인 아버님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실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드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자주 만났다.


그런데 이번처럼 2박 3일의 정식 여행은 처음이었다.


나로서는 어머님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시댁과 자주 여행을 간다는 타인의 사례에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쌓아온 부모님과의 시간은 항상 즐거웠기 때문에 기대도 컸다.


어머니는 평소 애용하시는 여행사를 통해 몇 가지 매력적인 여행상품을 추천하셨고,

그 중에 우리가 고른 건 '2박 3일 일정의 거제-부산-울산 버스 여행'이었다.




대망의 여행 당일 새벽, 첫 번째 픽업장에서 우리 부부가 먼저 탑승했다.

예약자명을 확인한 가이드는 우리를 버스 맨 뒤 좌석으로 안내했다.

여행비 송금 순서대로 좌석을 배정하는 방식인데 우리가 순서상 가장 늦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등버스라고 해도 여행 중 차량 이동시간만 어림잡아 20시간 가까이 되는 일정이었다.

나는 70대 부모님의 안전과 건강이 심히 걱정스러웠다.

앞자리로 옮길 수 있을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부부(40대)를 제외한 28명의 여행객 모두가 60~80대였다. 딱히 대안이 없었다.


잠시 후 부모님이 다음 픽업지에서 탑승하셨다.

나는 죄송한 표정으로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반응을 살폈다.


"아하하, 우리가 제일 끝이네? 내가 예약금을 조금 늦게 보냈더니.. 뭐, 어쩔 수 없지!"


어머니의 쿨한 반응에 내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걱정의 대상이었던 70대 부모님이 아니라, 우리 부부의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예민한 남편은 낯선 숙소와 버스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나는 멀미약 기운에 취해 비몽사몽 헤맸다.

평소와 다른 식단 탓에 변비로 고생하는가 하면, 여행지의 찬 바람에 노출됐는지 지독한 기침까지 시작됐다. 70대 부모님을 수발들겠다던 40대 부부는 어느새 골골대며 서로의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되었다.


"아휴! 병약한 애들은 다음에는 데리고 다니지 말아야지!"


농담이기는 해도 어머니의 푸념이 당연해 보였다.


새벽 6시에 기상해 하루 평균 3곳의 여행지를 소화하고, 그 과정에서 2만 보 이상을 걷는 훈련에 가까운 일정이었는데도 시부모님은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에너지가 넘쳐 보이셨다.


'이게 가능한가?'






내 눈앞에 가장 많이 펼쳐진 장면은 다름아닌 인디애나 존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어머니의 뒷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늘 우리보다 20m 이상 앞서 걸으셨다. 숨겨진 보물이라도 찾는 사람처럼 여행지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누비셨다. 어머니의 모습은 변화무쌍했다. 안내판을 깊게 읽고 계시다가, 어느 순간에는 사람들이 잘 찍지 않는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셨다. 그러다 갑자기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버스에서 들은 설명을 다시 확인하시기도 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어떤 물체의 의미가 궁금하면 AI에 질문을 던지고, 그래도 해소되지 않으면 그제야 우리 곁으로 오셔서 “이게 뭘까?” 하고 고민을 나누셨다.


어머니는 내가 살면서 처음 보는 '진정한 여행가'였다.

여행하는 동안 어머니의 나이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20~30대라고 하기에는 과장이지만 그렇다고 60~70대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또 다른 존재인 것만 같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70대" 어머니의 컨디션을 고려해 천천히 보폭을 맞춰드렸야 겠다라고 생각했던 건

"40대" 며느리의 대단히 큰 오산이었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여행은 삶의 원동력임이 분명해 보였다.

어머니는 여행과 사랑에 빠져계셨다.

핑크빛 주상절리 바위 사이로 따뜻한 2월의 깊고 푸르른 동해 바다가 따사로운 햇빛을 받아 윤슬로 가득했다.

눈이 부시도록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어머니 여기 서보세요. 너무 예뻐요. 사진 찍어드릴께요."


"아니, 괜찮아. 내가 사진 안에 있는 것보다 내가 직접 본게 중요해"


또 한 번은 국내에 2개밖에 없다는 국가정원에 들렀는데,

겨울이라 마른 가지와 흙이 드러난 꽃정원이 못내 아쉬워 "겨울이라 볼게 없네요"라고 푸념을 하자 어머니는 이렇게 답하셨다.


"꼭 그렇지는 않아. 사시사철 나름의 아름다움 있어. 그 계절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 돼"


이 두 마디가 이번 여행 중에 가장 오래남았다.


어머니에게 여행은 가족이나 지인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한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여행은 그 자체로 목적이었고, 무엇보다 앞서는 가치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며 문득 얼마전 시고모부님 장례식에서 사촌형이 보내온 메시지가 떠올랐다.

변호사로 성공한 그가 발인을 끝내고 전해온 세 가지 후회.


아버지를 안아드리지 못한 것,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그리고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 것.


그 메시지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지라도, 부모님께 비싼 차나 집을 사드릴 여유는 부족할지라도,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시간'이라는 것을.


남들처럼 귀여운 손주를 안겨드리는 기쁨은 드리지 못했지만, 대신 우리는 수시로 얼굴을 뵙고 함께 밥을 먹으며 사소한 농담을 나누는 '여백'을 선물해 왔다. 그 9년의 여백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 시부모님과의 여행은 고행이 아닌 가장 기다려지는 약속이 되었다.


"계실 때 잘해드려라."


모르는 자녀는 없지만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어쩌면 우리 부부의 삶이 헐렁한 덕분에 생긴 이 '삶의 여백'이

부모님께 효도할 시간을 만들어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다음 여행 전에는 체력을 더 길러야겠다.

인디애나 존스 같은 우리 어머니의 페이스를 따라가려면, 거북이 며느리에게는 운동이 시급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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