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생활이 특별한 이유
가족 밴드에 오랜만에 알람이 울렸다.
명절, 제사와 같은 연례 가족 행사와 관련한 공지사항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울리지 않는 곳이다.
마지막 알람은 지난 어버이날 모임이었다.
어머니였다.
올해 나의 70번째 생일을 맞아서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뷔페 어떠니?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이 있거든. 다들 스케줄 어떤지 알려줘
결혼 8년 차임에도 어머니의 저세상 쿨함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생신 파티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기쁨보다는 '이게 맞나..' 싶은 걱정이 앞섰다.
지금의 이 상황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쏠 테니까 마음 편하게 오면 돼."
심지어 돈까지 내주신단다.
나를 포함한 자식들은 얼떨떨한 심정으로 어머니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나의 어머님이 여느 어머니들과 가족관계에 대한 콘셉트가 "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기간 내내 그 '다름'은 대부분은 신선한 충격으로, 아주 가끔은 당혹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를 열렬히 존경했고, 사랑했고 때로는 원망도 했다.
어머니를 향한 다양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으며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 한 가지가 있다면
어머니 사고의 중심에는 오로지 '합리성'과 '주체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게 말이 돼?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라고 의심하는 많은 순간에조차
어머니는 일관된 언행으로 그러한 생각을 불식시켜 주셨던 것이다.
되짚어 보면 대표적인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먼 과거부터 훑어보자면 신혼여행 가서 부모님 선물 사는데 힘 빼지 말라며 재차 삼차 당부하신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말씀만 그러신걸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행 당일 아침까지 사차, 오차 당부를 하시는 통에 선물을 절대 사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만드셨다.
연에 두 차례 있는 제사는 일하는 며느리들 고생하지 말라며 8년째 100% 주문 음식으로 대신하고 있으며, 심지어 오전 차례만 끝나면 오후부터는 각자 스케줄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라고 해주셨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명절이 가장 한가한 며느리'가 되었다.
무엇보다 말로만 들었던 주기적인 통화나 방문을 강요하신 적조차 단 한 번도 없으시니 '시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한 번도 한적 없는 며느리'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런데 이번 칠순 생신이야말로 그러한 면의 '정수'를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다.
어머니는 칠순이라는, 당신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하루조차도 자식들의 일방적인 계획과 준비에 맡기지 않으셨다. 당신의 취향을 자식들이 알아내느라 고민할 시간과 에너지조차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보다는 어머니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레스토랑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초대해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셨다.
그야말로 '주체성의 인간화'였다.
어머니의 결정 덕분에 파티는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행복했고,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어머니라고 하는 한 사람의 남다른 삶의 철학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부모 자식, 고부 관계처럼 '도리와 책임'으로 정의되는 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 마땅한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인정이 더 중요한 분이셨다.
이 점을 이해하고 나니, 어머니를 더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