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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늘 May 09. 2021

엄살일 뿐 피드백은 널 다치게 하지 못한단다.

2021년 5월 9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피드백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결과물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정반대다. 피드백 자체가 싫기보다는 피드백을 기다리는 동안에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아서다. 마치 주사를 맞는 것과 같다. 나는 무려 고1 때까지 주사를 맞기 싫다고 학교에서 잉잉 울었는데 막상 주사기가 들어가고 나면 엥? 했다. 별거 아닌 주삿바늘인 걸 알면서도 왜 직전까지 그렇게 무서워 죽겠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꺅꺅거리면서도 꼭 주사기를 쳐다보고 있는 게 특이하다고 했다.


 이번 주 작사 수업은 수강생들이 각자 제출한 과제를 보고 선생님이 피드백해주는 시간이었다. 아직 기초반이라 작사 실습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틀간 ‘나 너무 잘한 거 아닌가?’ 하고 꿈에 부풀었다가 ‘이거 너무 구린데 어쩌지?’ 하고 정신 차리는 등 아주 생쇼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메일을 보냈다. 나는 수업 날짜가 다가오자 도망가고 싶었다. 수강생들 앞에서 저 이상한 가사가 띄워질 생각을 하니 정신이 혼미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도망가지 못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수강료 때문이었다. 2시간에 10만 원. 나는 금액을 곱씹으며 억지로 교실에 들어갔다. 하필 선생님은 내 과제 파일에 제일 먼저 커서를 갖다 대고 있었다.


“아...안돼액!!! 나중에 해주세요!! 제발요!!!!!!!!”


 나의 바람 빠진 비명에 반 사람들이 웃었지만 당장은 내 파일이 열리지 않겠다는 안도감에 수치를 몰랐다. 선생님은 요청이 너무 간절하니 어쩔 수 없다며 다른 분의 과제를 열었다.


 나는 매주 토요일 작사뿐만 아니라 작가 수업도 듣고 있다. 지금 다니는 학원의 시나리오 수업을 선택한 이유는 전문반인데도 ‘합평’이 적어 보여서다. 대부분의 작가 수업은 수강생들끼리 서로의 글을 피드백하는 ‘합평’ 시간이 많다. 마케터로 살다 보면 내가 만든 광고 캠페인에 쏟아지는 대중들의 피드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취미생활만이라도 마음이 편하고 싶었다. 간이 작고 햇병아리인 나는 합평보다는 선생님에게 이론을 배우는 지금 수업이 훨씬 좋았다.


 그런데 작가 학원마저 올 것이 와버렸다. 안 그래도 6주 차부터는 과제를 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게 할 것이라 하셨는데 한 주 미리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다음 주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글쓰기에 앞서 간단한 과제를 내주셨다. 고통스러운 것은 수강생들끼리 댓글로 1에서 10점까지 점수를 매기고 그 이유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도 우려가 없는 건 아니신지 피드백은 길게 쓰지 말고, 똑같은 말이라도 유하게 쓰고, 기분 상할 말투는 쓰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이번 주 처음으로 경험해 본 작사 과제 피드백 시간은 막상 내 과제가 화면에 띄워지고 나니 아무렇지 않았다. 다음 주 금요일에 내 과제 게시글에 달릴 열 개의 댓글도 막상 보면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직전까지 너무 스트레스받는 걸. 왜 주사처럼 별거 아닌 걸 알아도 매번 긴장될까.


 내일부터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다. 처음으로 스타트업을 벗어나 대기업의 체계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에겐 미지의 세계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지 감이 오질 않지만 일단 성과 평가에 대한 부분은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지금까지는 피드백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말 나오기 전에 더 열성적으로 일했는데 이제 그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겠지? 더 유연하고 쿨해지고 싶다.


 언론고시생 시절, 혼자 버티다가 일 년 내내 떨어졌던 방송국 필기시험은 스터디에서 피드백을 들은 지 한 달 만에 모조리 붙기 시작했다. 해보면 별거 아니란 것을 안다. 얘야, 너는 엄살이 심할 뿐 대부분의 피드백은 너를 다치게 하지 못하단다. 사주처럼 좋은 것만 골라 들어봐. 그래도 긴장되면 일단 딴생각 많이 해야지 어쩌겠어.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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