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봐야지. 사랑할 때까지.

2026년 2월 2일

by 지금을

주말에 제주도로 풋살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선수 아님. 회사 동호회임. 국대 할 거냐는 놀림 금지.) 잠시 뜨는 시간에 침대 위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데 C가 나에게 말했다.


“언니가 풋살 중에 활짝 웃을 때가 있는데 나는 그때 언니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언니의 화장이 그걸 가리는 거 같아. 그게 언니의 추구미면 너무 찬성이고 좋아. 근데 언니가 뭘 원하는지 모르고 그냥 하는 거 같아서 그래. 언니 추구미는 뭐야?“


앗. 그러고 보니 추구미가 없다. C의 말은 정확하다. 나는 화장을 잘 못하고 화장품이나 화장법에 관심이 없다. 코로나 이후에 더 심해져서 모든 화장이 5분 컷으로 끝난다. 그렇다고 또 쌩얼로 다니진 못한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어제와 오늘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 같다. 갑자기 너무 안색이 피곤해 보인다고 생각하거나 ”원래 얼굴이 저랬어?“라고 놀랄까 봐 변화의 용기가 안 난달까. 그래서 동생이 프링글스 수염 같다고 제발 지우라는 내 아이라인이 별로란 걸 알면서도 어제와 똑같이 오늘도 그리는 것이다. 가끔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그건 쓰던 화장품을 못 사서 달라진 것인데, 색이 잘 안 어울리거나 발색이 과한 거 같아도 닳을 때까지 쓴다.


최근 휴직도, 내성 발톱 교정도 C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시작한 나는 그녀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므로 진지하게 이 부분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했다. 때마침 오늘 생각 글의 주제가 ‘음미‘라서 잠에서 막 깬 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내가 서툰 화장으로 그 오랜 시간 숨기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먼저 나는 동그랗고 넓은 편인 내 이마를 좋아한다. 마치 다듬은 것처럼 진하고 단정한 눈썹도 좋다. 사실 숱이 적고 연한 눈썹을 동경해 갈색으로 염색하다가 독한 약에 눈썹이 다 뽑힐 거 같길래 자연 상태의 눈썹을 강제로 수용한 것이긴 하다. 뺨에 집중적으로 퍼져있는 주근깨는 언젠가 빼야 할 숙원사업으로 여겼지만, 몇 년 전부터는 어쩔 수 없는 내 개성으로 인정하고 이젠 꽤 맘에 든다. 코는 작고 뭉툭한데 좀 더 얇고 오똑하면 좋겠지만 무난무난한 것 같다. 윗입술이 뒤집어져서 두꺼워 보이는 것은 어릴 땐 정말 싫다가, 노화의 가장 큰 특징이 윗입술이 얇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자꾸 윗입술을 손으로 꾹꾹 뒤집는 기행을 하고 있다. 게다가 서른이 지나면서 빨갰던 입술 색이 생기가 없어지면서 강박적으로 립스틱을 챙겨 다닌다. 딱 한 군데만 화장할 수 있다면 난 아마 이 입술에 칠하겠지. 얇아지지 마. 칙칙해지지 마.


하지만 내가 가장 숨기고 싶은 본연의 얼굴은 눈일 것이다. 난 내 눈이 더 크고 가로로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속눈썹도 많고 길었으면. 미간이 조금만 더 좁았으면. 그래서 눈앞 꼬리부터 아이라인을 채워서 길게 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못 그리다 보니 만회하기 위해 눈두덩이에 섀도를 마구 칠한다. 커져라 꼬막눈! C는 내가 청초한 게 훨씬 어울린다고 했다. 하지만 청초해지려면 화장을 덜어내야 하는데 원초적인 나는 너무 비루하지 않을까. 뒤트임 실패로 왼쪽 눈에는 지져진 흉터도 있다.


침대에 누워 글을 쓰다 다시 일어나 거울을 본다. ‘음미’. 썩 좋지 않은데 이게 ‘음미’가 맞나. 거울을 보고 나를 탐구하는 건 왜 이리도 어색한가. 휴직의 행복만으로는 아직 완전히 떨치지 못한 자기혐오가 투명 실처럼 엉켜있는지도 모른다. 힘주어 마주한 거울 속의 내 생눈은 평소 생각처럼 너무 답답하지는 않은 거 같기도 하다. 생각보다 큰 거 같기도 하고 짤똥해도 모양이 예쁜 것 같기도 해. 그리고 나는 내 눈에서 까만 동자가 흰자보다 크고 빛나는 점을 좋아한다.


나의 화장은 달라질 수 있을까. 스스로를 꾸밀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얼굴을 가장 잘 알아서 중요한 순간에 솜씨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 지금처럼 대충 단점을 감추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장점을 살릴 생각을 해야겠지? 내게 어울리는 건 무엇인지, 추구미는 뭘지도 생각해야겠고, 화장품도 고민해서 사고, 화장법도 열심히 보면서 눈코입을 음미하고 연구하고 알아보고 그래야 할 것이다. 과연 제가 여기 돈과 시간을 쓸지 귀추가 주목되네요.


나는 나를 위한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습관처럼 급할 때 나를 제일 먼저 버리기 때문이고, 불안이 많아 늘 급하기 때문이다. 더 나올 물도 없는 걸레를 쥐어짜는 것과 같다. 손이 따갑도록 전부 짜내면 지쳐서 밤새 릴스를 보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유해한 하루하루의 나. 그래도 해볼 거야. 휴직이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나쁜 버릇이 바로 달라질 수 있겠냐마는 백수 한 달 차에 접어들자 회사라는 껍질이 벗겨진 내가 양파처럼 나오고 있다. 그 속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봐야지. 사랑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