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2026년 2월 3일

by 지금을

나는 언제부터 겨울이 두려워졌나. 자아가 말랑한 학창 시절엔 어땠는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때도 딱히 겨울을 선호하진 않았던 것 같다. (최애 아이돌 오빠 생일이 겨울이라서 무지성으로 좋아했을지도) 성인이 된 후로는 공교롭게도 인생 첫 전신마취 수술을 겨울에 했고, 첫 퇴사도 겨울에 했고, 처음으로 공황발작이 온 것도 겨울이었다. 해서 나에게 겨울은 무언가 이별하거나 놓아줘야 하는 불운의 계절 같았다. 어쩐지 연예계 사건 사고도 많이 터지고, 부고 소식도 늘어나서 너무 싫어. 게다가 추움. 나는 봄이 되면 의욕이 넘쳐 많은 것을 시작했다가 겨울이 되면 웅크리고 몸을 사리게 됐다. 휴직을 겨울에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근 10년쯤 나를 지켜본 의사 선생님은 잘살다가 겨울이면 병원에 오는 나를 두고 이건 심리적인 게 아니라 물리적인 것이란 결론을 내리셨다. 실제로 상사의 만행이 갈수록 심해져 전 주까지 약을 늘릴지 고민했던 공황 증상이 봄이 되자 바로 사라진 적도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내가 빛이 중요해서 그런 것이라고, 매년 가을쯤에 ‘광 치료’라는 걸 받아보라는 말을 해주셨다. 다만 회사 일에 치여 ‘광 치료’고 뭐고 검색할 틈도 없이 지내다 보면 늘 어둑한 겨울이 성큼 와있는 것이다. 그럼 봄이 올 때까지 악착같이 애를 써서, 낙천적인 마음으로 나를 편하게 해주려고 긴장한다. 나는 태양이 아닌데도.


이토록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겨울을 최근 음미할 수 있게 된 건 역시 휴직 덕분일 것이다. (퇴사로는 안 된다. 휴직이라는 애매하고 느슨한 안전망이 있는 채로 노니까 주변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게 됐다.) 비록 눈사람처럼 롱패딩으로 꽁꽁 싸맨 상태이지만 요즘 나는 마음이 하해와 같이 넓어져 차가운 겨울의 기운을 즐기고 있다. 칼바람 속을 걷다 보면 왠지 칼로리 소모가 많이 되어 내 체지방이 날아가는 듯한 기쁨도 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포장마차 속의 어묵이나 잉어빵 냄새도 낭만적이다. 전기장판 위에서 귤을 까먹으며 눈이 내리는 걸 보는 것도 운치 있다. 얼 것 같은 뺨으로 서로 웃으면서 공을 차는 것도 뿌듯하다.


어쩌면 휴직과 무관하게 내가 나이를 먹은 걸지도 모른다. 진절머리 나게 싫었던 것, 피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경계가 무뎌진다.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은 나날. 겨울은 손이 시려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동안 휴대폰을 할 수 없는 것도 이제 불편하지 않고 좋다.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없고, 그저 춥다는 감각,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적의식만 남는 게 마음에 든다. 그래서 더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내 증상의 원인은 물리적인 것이란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여전히 겨울을 싫어하는 심장은 쉽게 신경질적으로 뛴다. 하지만 봄이 되면 사라질 신기루라는 걸 안다. 쥐어지지도 않는 불편함 때문에 이번 생에 최대 백 번 이하일 겨울을 눈 질끈 감고 인내만 하면서 보내지 말자고! 하지만 할머니 되면 꼭 여름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뒷일을 도모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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