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4일
산더미처럼 쌓인 가사 마감을 못 하고 있다. 사유는 어젯밤부터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몸. 오한이 들고 인간 위고비가 된 것처럼 메스꺼워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이번 일주일은 ‘음미’에 집중하기로 했는데 물조차 음미할 수 없는 상황. 우리가 무언가를 음미하는 걸 방해하는 1순위는 건강일까.
처음 작사를 배울 때 가장 곤란했던 것은 할 말이 없다는 거였다. 찌든 직장인의 머릿속엔 오로지 ‘출근하기 싫다’, ‘상사가 싫다’, ‘로또 되었으면’이란 생각뿐이라 아이돌을 화자로 삼아 세상에 던지는 말로는 적절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빙의’만 잘하면 된다고, 그럼 2절까지 해야 할 말이 막힘없이 나올 것이라 하셨다. 하지만 도무지 몰입이 어려웠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으니 데모곡의 영어 발음에 맞춰 낱말 맞추기를 하는 방식으로 꾸역꾸역 1절을 시작했다. 그럼, 보통 괴랄한 가사가 탄생한다.
짧은 글쓰기 정도로 여겼던 작사는 사실 글이 아니라 말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창작도 아니다. 이미 작곡가가 쓴 멜로디 안에 글자 수와 띄어쓰기와 말투, 분위기 등이 모두 정해져 있고 앨범마다 유기적으로 이어져 온 아티스트의 캐릭터성도 있다. 요새는 소속사에서 구체적인 요청 사항을 주는 경우도 많다. 해서 2-3년 차에는 작사가 예술보다는 마치 마케팅 외주처럼 여러 조건을 완벽하게 맞추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작사가는 복잡한 제약 속에서도 자신만의 예술성을 보여줘야 한다. 캐릭터와 상황을 빌딩하고, 그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캐릭터를 가지고 조건 위를 뛰어놀아야 한다. 그래서 휴직하고 나서부터는 자수를 먼저 따지 않고, 계속 데모곡을 음미하게 됐다. 어떤 화자로 어떤 이야기를 하게 해야 할지, 이 노래가 내게 하고 있는 말은 무엇인지, 끝없이 곱씹어본다. 마감 일자가 촉박하다고 해서 충분히 데모곡을 음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결국 듣는 사람의 마음에 와닿지 않는 피상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말이 술술 나와 한 곡을 쓰는 데 드는 시간이 굉장히 줄었다. 가사를 쓰는 것도 마냥 설레고 재미있다. 이 변화는 역시 시간이 넘쳐흐르는 휴직 이후부터이니 음미의 절대 요소에는 시간이 들어가는 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한, 나를 위한 시간이 충분한, 그래서 생기는 마음의 여유. 그게 가장 중요한 거겠지. 지금의 여유가 영원하여 휴직이 끝나고서도 나를 잃지 않고 삶을 음미하며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잘릴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소리는 하기 싫은 자존심, 설사 회사 밖에서는 영영 안 볼 미운 상사라도 인정받고 싶은 애정결핍.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이들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미래의 나를 구할 사람은 오늘의 나뿐. 나...나만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