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가 함께 떠난 유럽 여행기
일주일간 아일랜드 곳곳을 여행하는 동안, 떠나는 날을 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창했다. 마지막까지 맑았다면 하늘에 감사할 일이지만 아일랜드 진짜 날씨를 엄마와 동생에게 보여주지 못해 내심 아쉽고 배신감(?)도 들었다. 그래도 아일랜드 여행은 8할이 날씨라, 날씨가 좋지 않으면 좋은 곳도 좋지 않을 수 있다.
나의 기도가 통한 건지 우리 중 강력한 ‘날요’(날씨요정)가 있는 건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부터 영화 P.S I LOVE YOU 촬영지기도 한 위클로우, 기네스 역사와 드래프트 체험까지 즐길 수 있는 기네스스토어하우스, 내가 좋아하던 바다 달키, 현지인이 말하는 제2수도인 코크, 예쁜 어촌마을 호쓰까지 성공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호쓰는 맑은 날도 예쁘지만 흐린 날씨에 빛을 발하는 곳인데, 흐릴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진짜 날씨를 경험했다. 떠나오기 전 엄마, 동생이 짐을 챙기면서 물었다. “아일랜드 매일 흐리고 비 온다고 했으니까 우산 챙겨야겠지?” “네, 꼭 필요한데 소용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 아일랜드는 보통 비만 오거나 바람만 부는 게 아니라 비바람을 한번에 가져다준다. 그래서 아이리쉬들은 우산을 잘 쓰지 않고 옷에 달린 후드나 우비를 입고 다닌다.
호쓰가 아일랜드 마지막 여행지였는데 아침부터 비가 보슬보슬 내리더니 태풍급 비바람을 경험했다. 아일랜드 바람은 장바구니를 든 나를 공중부양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여행 내내 맑아 내심 서운했는데 마지막 날 아일랜드 진짜 날씨로 엄마, 동생의 혼을 빼놓아서(?) 아주 흡족했다.
그렇다고 아일랜드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집에만 있으면 안 된다. 맑은 하늘에도 비를 뿌리기도 하고, 비바람이 불다가 쌍무지개를 띄우기도 해서 아이리쉬들은 변덕스러운 아일랜드 날씨를 “러블리”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여태 살면서 본 무지개보다 1년간 아일랜드에서 본 무지개가 훨씬 많아서 비 온 뒤 맑은 날씨를 볼 때면 더없이 행복하고 좋았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하늘을 더 많이 보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날씨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맑은 날씨를 좋아하던 나였는데 매일 흐리고 비 오는 이 아일랜드에 1년간 살았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도 어떡하나. 자연을 바꾸지 못하면 사람을 바꾸는 수밖에. 아일랜드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우산보다 우비 그리고 모자를, 비 온 뒤 무지개를 찾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