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얘를 어쩌냐?

질문하는 인간과 쓰는 기계의 시대

by The reader


오랜 시간 글쓰기에 몰두해 온 이들에게
인공지능 시대는 낯설다.

동시에, 궁금하다.

깊이 있는 독서와 비판적 사유,
수십 번의 퇴고로 다듬은 문장조차
이제는 ‘기계가 쓴 글’로 오해받는 시대다.
잘 다듬어진 문장과 구조화된 이야기 흐름은
한때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증표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인공지능의 결과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책을 읽고, 관계를 겪으며,
시간의 결을 따라 언어를 다듬어왔다는 점에서
분명 다르다.
완성된 글만 본다면
인간과 인공지능의 문체는 꽤 닮아 있다.
AI가 언어를 익히는 방식 자체가
우리가 글을 배워온 흐름을 따르니

이를 아이러니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젠 시대가 되묻는다.


"정갈한 문장이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면,
내 글은 무엇으로 사람다움을 증명할 수 있을까?"



질문은, 여전히 인간의 언어다.

지금 글쓰기의 중심은

‘무엇을 어떻게 쓰는가’에서

‘무엇을 왜 묻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기계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삶을 살며 읽고, 겪고, 고민한 끝에 떠오르는 질문은 오직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감각이다.

우리가 인공지능에 무엇을 묻는가가

곧 우리 사유의 깊이를 드러내는 시대다.


따라서, 글을 잘 쓰는 재능을 넘어

어떤 질문을 기획하느냐가

작가성과 배움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 현장에 더 빨리 닿았다.

학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쌓거나

형식적인 글을 쓰도록 요구하는 것은

이제 충분하지 않다.

기계와 함께 글을 써야 하는 시대,

어떤 문제를 구성하고

어떤 자료를 선택할지를 먼저 알려줘야 한다.

기계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 자체가

사유의 시작이며, 다시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그 인식이 부족한 과도기의 교육 현장은,
누가 ChatGPT를 썼는지를 밝혀내는 일에만 급급한 모양이다.


읽기는 생각의 지도를 펼치는 일이고,
글쓰기는 그 길을 따라 걸어보는 일이다.


읽기와 쓰기의 교육은 여전히 중요하다.
AI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많이 읽고,

더 천천히 써야 한다.
다만 그 목적이 ‘정답을 쓰는 훈련’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감각’을 키우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책을 읽는 일은 오히려 절실해졌다.
질문의 탄생과 사유의 확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제 작가의 정의도,

단어를 꾸미고 문장을 수려하게 써내는

사람만이 아니다.
‘무엇을 물을 것인가’,
‘무엇을 사유하고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존재로 그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기술은 계속 진화하겠지만,
사유를 설계하고 질문하는 감각은
마지막까지 인간의 영역이다.
그 능력을 기르는 일이
지금 가장 필요한 교육의 방향이자
우리가 이 시대를 건너는 방식이 될 것이다.



지난 새벽, 철학 리포트를 두고 방향성을 묻는
아들의 전화가 울렸다.
얼개를 같이 생각해 보자 했더니,
정작 본인의 글은 보여줄 수 없단다.
엄마의 손이 스치면 인공지능에 의존했다는 '억울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작가 엄마가 써준 거 아닐까’의 시선을
경계했던 아이의 첨삭 사절 스토리가
참 유구하다.
누군가는 좋은 결과를 위해 비용까지 지불하며 작가를 찾지만, 아이는 작가 엄마를 애써 지우려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대학에선 ChatGPT에 기대지 않았다는 걸
또다시 증명해야 한단다.
스스로의 문장을 지키기 위한 아이의 건투를, 건필을 빈다.

그런데, 공대생이 글쓰기에 그렇게 예민할 필요가... 그래, 있다.

전화를 끊고 때 놓친 식사를 하다
AI 시대의 글쓰기를 고민하는
이 피곤한 꼬리물기.

일단, 좀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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