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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The reader
Apr 13. 2020
시작은, 방송작가가 제일 쉬웠어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데
,
사실 열 번씩이나 찍을 필요는 없었다.
두
번의
공모
노크에
덜컥 방송국 문턱을 넘게 된
그때가
스물셋
즈음이었을
것이다.
왜 하필 방송작가였는지 물을 때마다
듣
기 좋게 포장하던 막내시절도
있었지만
적당히 뻔뻔해진 중년의 작가는
이제 당당히 말한다.
'
윤상' 만나려고 방송작가 됐다, 고
.
그렇다.
지금은 어엿한 중년의
음악감독으로 인정받는
이
남자 '윤상'말이다.
90년대 초 윤상이
2집을
발표했을 즈음
내 마음은 이미 여의도로 돌진 중이었다.
팬클럽이 되어 '오빠
~
'를
외치며
만나는
방법이
가장
빨랐
겠지만
나는 그렇게
순수한
부류가
못되었던 것 같다.
방송국에 들어가
당당하게
동료로
내 가수를 보고 싶은 욕심.
"
그래.
일
로 만나는 사이가 되자!"
열일곱
여고생이 품기엔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꿈이었지만
적어도 그
꿈은
내게
달릴 수 있는
채찍이
돼주었다
.
공부를
더
탁
월하게
했더라면
PD가 되려 했을지도 모른다.
미모가 보다
월등했다면,
혹은
월등한
미모
살
의느님
알현
비용이
있었다면
아나운서 쪽으로 돌진했을 수도
있었겠다.
내가 가진 환경과 재능 안에서
조금만
더 노력해
이룰
수 있을
방송 입문의
방법
을
고민하니
내겐 방송작가가 딱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간사하다
.
작가가
되어
보고팠던 '
윤상'을 출퇴근길
보게 됐지만
막상
내
밥벌이
앞에서
스타에 대한
환
상 따윈
보따리 풀 겨를이
없더라는 것.
윤상 오빠
보다
당장의 회의 준비와
원고 마감이 더 급한,
그저
팍팍한
삶의 현장이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방송가의
그 흔한
'
빽
'
한 줄기도
,
서넛
건너 하나라는
SKY학벌도
없었지만
무슨 운명인지
퇴짜
경험 한 번 없이
졸업도 하기 전
습작 대본 한편으로
덜컥 공모를 통과해 버렸다.
그것도
한 시대를 대표하던
프로그램으로
!
남들 미팅하고 MT 갈 때
컴퓨터 앞에
엉덩이 붙이고 습작하던
인고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마저
긴
시간은
아녔던 게
사실이다
.
하지만
운이든
대본
빨이든
딱 거기까지!
중요한 건 입문이 아닌
그
이후의 자기
증명이었
다.
쉽게 들어갔지만
쉽게 버틸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 온
20여 년.
나를 충분히 증명할 수
없어
피멍드는
쓴맛은
오히려 입문 이후부터
시작
된다.
두 주먹 불끈
쥐고
김은숙ㆍ이우정만큼
되지 말란
법
없
지만
아무나
그들
이 될 수 없는 현장
.
가늘고 길게
버텨온
보통 작가의
20여 년엔
매 순간 불확실성과 회의가 깃들
수밖에 없다.
성
공담은 많이도 들어왔을 테니
언젠가 나는
실패의
경험들
을
풀어내기로 한다.
방송작가
'
실패기
'
라니.
쓰디쓰지만
그것이 내 전공분야이니
어쩔 수 없는 걸로
칩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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