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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Aug 16. 2024

엄마의 통장 잔고 200만원

돈이 없다는 건

나는 외동딸이다. 우리 집은 잘사는 집은 전혀 아니었고 내가 태어날 무렵엔 단칸방에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곧 부모님이 석유장사를 하시면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셨고 무엇보다 자식이 하나인 덕에 집의 형편이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크게 부족한 것 없이 누리고 자랐다.


장사를 하는 집은 순이익이 많이 남지 않더라도 스쳐지나는 돈이 많아서 씀씀이가 커지기 쉽다. 우리집도 그런 편이었고, 누리는 것은 부족함이 없었지만 재산이 증식되진 않았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각 집의 기름보일러가 가스보일러로 대체되었다. 기름을 팔던 우리의 장사는 이른바 사회구조적 폐업을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아빠는 그 무렵 병을 얻었다. 당뇨, 고혈압 등의 흔한 성인병과 함께 풍이 오셨다. 심각하게 편찮으신건 아니었다. 마비가 되진 않았고 한번씩 한쪽 팔다리에 힘이 없어진다고 하셨다.


구조적 폐업 이후, 우리 집의 가계는 엄마가 책임지게 되었다. 엄마는 요리를 참 잘하셨다. 늘상 소극적이던 엄마가 그 때는 무슨 용기였는지 자신이 식당을 한번 운영해보겠노라 하셨다. 처음엔 야식집을 해보겠다고 했는데 허가 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조금씩 형태가 바뀌다가 결국은 신생 체인의 3번째 체인점이 되었다. 체인점은 유명해야 그 덕을 볼 수 있다. 신생 체인점은 인지도도 부족했고, 홍보 등 지원도 부족했다. 그러면서 수급받는 재료비만 비쌌다. 게다가 1년 남짓 지난 시점에 체인 자체가 망했다. 비싼 돈을 들여 체인점 계약을 했는데 그 덕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본사가 망해버린 것이다. 이후로 가게는 앞을 트고 떡볶이 집으로 변신했고 온갖 메뉴를 다 파는 집이 되었다. 맛있는 집은 메뉴가 많지 않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메뉴가 많아진것은 장사가 잘 안되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다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 저것 정리하지 않은채 새로운 시도만 하다가 식당은 색을 잃어버렸다. 메뉴가 많으면 재료 관리도 어렵고, 조리도 쉽지 않다.


이처럼 엄마가 난생 처음 해보는 음식 장사로 골머리와 골병을 동시에 앓고 있을 무렵,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아빠는 암을 얻으셨다. 엄마는 혼자 가게도 운영하면서 아빠 병수발도 들어야 했다. 철딱서니 없는 외동딸이었던 나는 그저 공부하고 학교간다는 핑계로 밖으로 돌았다. 겨우 하나 마련해두었던 세식구의 보금자리 자가를 팔아 엄마 식당으로 생긴 빚을 갚았다. 우리 식구는 근처 반지하 빌라로 이사를 갔다.


대학은 학자금으로 계속 다닐 수 있었다. 장학금도 받았다. 나는 자격시험을 보는 걸 목표로 하는 학부를 전공했는데 그 공부는 동영상 강의를 많이 들어야 했다(아니면 특정 동네 학원으로 가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동기들은 동영상 강의를 편하게 듣기 위한 기기들을 마련하는 걸 보며 나도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돈이 없어서 못산다던 내게 친한 동기는 이렇게 말했다. “돈이 없으면 엄마한테 달라고 해” 


그렇다. 흔한 대학생은 자기가 돈이 없을 수는 있어도 부모에게 돈이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말한 “돈이 없다.” 함은 엄마에게도 내게 줄 돈이 없다는 걸 의미했다. 우연히 본 엄마의 통장잔고는 200만원대에서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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