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분야도 있더라
첫째 임신과 둘째 임신은 난이도가 다르다.
경력직이라고 둘째가 낫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나의 경우는 여러가지 환경적 요인으로 난이도가 더 상향조정 되긴 했지만 말이다.
첫째때는 겨울 만삭이었다. 원래 추위를 많이 타긴 하지만 임신때문에 추위를 더 타는 느낌은 없었다. 둘째는 여름 만삭이다. 정말 덥다. 더위를 덜타는 편이라 더위 많이타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온도차가 있었는데 올 여름은 내 기준으로 에어컨을 맞춰놓으면 남편이 너무 춥다고 했다.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놓아도 온몸, 특히 머리와 얼굴에서 시도때도없이 열기를 뿜어대는 느낌이다. 내 생애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첫째는 12주때부터 일을 쉬었다. 코로나 시기여서 남편도 재택근무를 했다. 원래 일을 쉬게되면 내가 집안일을 좀 더 맡아 해야했지만 임신 중이라 계속 남편이 많이 했다. 나는 집에서 넷플릭스 보며 실내 생활을 지루해하고 처음 겪는 임신증상에 불안해하는게 다였다. 아주 인생 황금기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전적한 본사에서 1년 정도 허우적거리며 겨우 적응해서 다니던 무렵 임신했다. 남성위주의 회사인데다 내 직속 상사는 딩크라 임신했다는 말조차 하기가 조심스러웠다. 35주까지 왕복 2시간 거리의 회사를 출퇴근하며 임신기간을 보냈다. 신체적으로는 훨씬 힘들었지만 임신기간이 빨리 흘러갔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살도 비교적 많이 찌지 않았다.
두번째 임신이기도 하고, 회사 다니랴 집에 오면 첫째 돌보랴 정신이 없어서 35주까지 출산준비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첫째때 처음 느낀 태동에 대한 감동도, 심장박동에 대한 감회도 둘째때는 없었다. 그저 잘 크고 있네 정도. 병원을 너무 자주가야 하는게 되려 힘들었다.
그런 우리의 반응이 서운했던건지 둘째는 입덧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했다. 첫째는 입덧이 거의 없었다. 입맛이 없고 평소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가 땡기지 않는 정도였는데 둘째는 입맛이 없을 뿐더러 뭘 먹어도 속이 더부룩 했다. 그래도 먹은걸 다 토하진 않고 자주 헛구역질 하는 정도라 다행인가 하고 있었는데.
한번은 퇴근하고 차를 몰아서 집에 오는 길이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속이 안좋았다. 탄산을 마시면 좀 나을까 싶어 맥콜 하나 마시면서 오는데 갑자기 너무 심한 구역감이 오는거다. 도로 한복판에서 운전은 멈출수가 없었다. 퇴근길 차가 너무 많아서 차선 옮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핸들을 잡은채로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쏟아져 나온것은 맥콜맛 하얀 거품이었다. 액체도 다른 형태로 토할수 있다는걸 처음 경험했다. 거기까지였더라도 괜찮았을 것을… 한번 시작된 구역질은 멈출줄을 몰랐고 나는 운전하면서 분수와 같은 그것을 운전석 여기저기 쏟아냈다. 따뜻하고 뭉클하면서 냄새나는 그것들이 옷, 핸들, 손, 시트 가리지 않고 뿌려졌다. 겨우 차를 바깥 차선으로 옮기고 비상등을 켠채로 조금이라도 수습해보고 싶었지만 그것의 양이나 위치가 혼자 수습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고 물티슈마저 뒷자리 손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집 주차장까지 그 상태로 와서야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운전석을 탈출할 수 있었다. 차는 아무리 닦아도 만신창이에 냄새도 너무 심해서 특수세차를 맡겼고 비용만 50만원이 넘게 나왔다. 이후 얼마간 나는 가방이나 차 내부에 검은 비닐봉지를 꼭 챙겨다녔다.
입덧이 이렇다보니 철분제를 잘 챙겨먹지 못했다. 기분탓인지 철분제를 먹으면 더 속이 안좋고 컨디션도 나빠졌기 때문이다. 임산부지만 직장에서 업무를 해야하는데 하루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안되니까. 덕분에 빈혈을 진단받았고 액상 철분으로 바꿔 먹었는데도 철분수치가 나아지지 않아 결국 철분주사까지 맞았다. 모두 첫째때는 없었던 일이다.
첫째때보다 둘째때는 배도 더 많이, 더 빨리 나왔다. 친구의 말로는 한번 늘어났던 가죽이라 탄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첫째때는 임신기간 중에는 튼살이 생기지 않았고, 출산하고 배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배꼽 근처에 약간의 튼살이 생겼었는데 둘째때는 중반 말기부터 배가 트기 시작하더니 만삭에는 배 아랫부분까지 모조리 트고 급기야 참기 어려울만큼 간지럽다. 아토피를 앓는 분들의 고통이 이런걸까 생각하며 하루종일 긁었다가 때렸다가 참았다가 하고있다. 배를 긁거나 때리면 아이가 태동을 미친듯이 하는 건 덤이다.
첫째때는 초반에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도 들다가 아이가 태동을 하고 나서부터는 너무 신기하고 귀해서 우울한 생각이 싹 가셨었다. 그런데 둘째는… 태동을 시작했는데도 (물론 그 느낌이 너무 좋긴 하지만) 한번 경험해본 것이라고 엄청 신기하지는 않았고 여전히 불안하고 순간 순간 우울감이 느껴졌다. ‘낳으면 좀 살만해지겠지’ 해야 기분이 나을텐데 ‘지금도 힘든데 낳으면 더 힘들겠지’ 생각하니 우울감이 몰려온다. 아는 고통이 더 무섭다고 경력직의 비애다.
집에 왔다고 누워서 쉴수도 없다. 첫째가 임신한 엄마에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경쟁자가 생긴걸 알고 반응한다고 하더니만 엄마에게 별 미련없던 우리 아이마저 이럴줄은 몰랐다. 내가 집에 있는 한 할머니에겐 가지 않고 아빠에게도 요즘은 잘 안간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한편으로 좋기도 하지만 부른배를 부여잡고 아이의 지시사항을 이행하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마지막. 첫째때와 같은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특정 날짜(내 기준 39주 1일)에 마취과 선생님 부재 예정이라 그 날 진통이 오면 무통주사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무통 맞으면서 무난히 낳았는데 둘째는 이마저도 불투명한 운명이라니.
둘째 임신기간은 이렇게 더 더 어렵다. 주변에 둘째 임신한 분이 계시다면, 혹시 그 분이 와이프라면 정말 잘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