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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흥 Dec 17. 2018

네덜란드의 소도시 하를렘

평화롭고 차분한

형, 안녕.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네. 거의 2년만이네. 그동안 음악 작업에 빠져 글쓰기는 엄두를 못 내고 얼마 전 다시 글을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난 일주일 동안 네덜란드와 독일에 잠깐 다녀왔어. 내 노래를 편곡해주는 편곡자 이정한 형(이 분은 가수 이장희 선생의 동생이지)이 네덜란드에 살고 있고, 독일에는 친구 문식이가 있어서 잠깐 짬을 내서 이 그리운 이들 얼굴을 보고 온 거야.


정한 형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 헴스테데에 살고 있는데 바로 옆 동네 하를렘(Haarlem)을 혼자 둘러봤어. 정한 형 은 자전거를  타고 가라고 했지만 집에서 3.5km의 거리라 천천히 걸어가겠노라며 집을 나섰지.


동네는 평온했고 거리엔 인적도 드물었어. 하를렘에 가는 동안 걸어다니는 사람은 정말 한 사람도 못 본 것 같아.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 네덜란드가 자전거 보급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더라고. 간혹 조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긴 했는데 그처럼 운동을 위해 뛰는 사람들 말고 이동을 위해 몇 킬로미터 되는 거리를 걷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더라고.


도로와 나란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자전거도로도 인상적이었어. 도로는 넓지 않았고 자전거도로는 좁지 않았지. 횡단보도도 인상적이었는데 저전거도로와 인도에 모두 이용자가 누를 수 있는 신호 변경용 버튼이 있는데 버튼을 눌러보니 정말 금세 신호가 바뀌더라고. 사람 우선? 그래, 그 말이 떠올랐어.


하를렘역까지 가는 길엔 전원주택 같은 집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었어. 지붕이 뾰족한 예쁘고 낮은 집들, 모두 정원을 갖춘 듯했어. 하를렘은 암스테르담보다 빨리 만들어진 도시라고 해.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 시대를 이끌었다는데 1245년에 만들어진 이 작은 도시는 한 마디로 물감이 덜 마른 수채화 같았어. 정말이지 혼자 산책하기론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어.


하를렘역 근처에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시청 앞 광장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었는데 인쇄술로 유명한 이곳 하를렘 출신의 Laurens Janazoon Coster(1370~1440)의 동상이야. 구텐베르크와 거의 동시대에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하네?


눈길이 닿는 곳 하나하나가 예쁘기만한 낮고 깔끔한 도시. 건물이 낮으니 하늘은 더욱 넓어보였어. 사람들의 표정 역시 평화로워 보였고.


아드리안 풍차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파랬고 구름도 적당히 하늘을 받치고 있었어. 불과 20분 쯤 후 소나기가 쏟아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네덜란드 겨울의 특징은 잦은 비와 긴 어둠. 예술가들이 복 받은 환경인가? 적어도 애주가에겐 더없이 좋은 환경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벤치에 걸터앉아 무념무상으로 풍차를 바라보다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져 노트와 펜을 꺼내어 끄적이고 있는데 갑자기 노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곧이어 후드득 소나기가 쏟아졌어. 하지만 비는 오래잖아 그쳤는데 늘 그런 식이래. 문득 오다가 문득 멈추는. 먼 친척의 연락처럼.


작은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브런치를 주문해 먹는 동안 드나드는 손님들과 여주인의 대화는 유쾌하게 공간을 돌아다녔어. 여유로움이랄까? 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하더라고. 미소는 덤. 여유로움도 문화의 한 부분이니 여유로움이 일상에 섞일 때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겠지. 각박하게 느껴지는 우리 사회와 너무도 완벽하게 대비되어 좀 씁쓸하기도 했어. 부럽기도 했고.


형, 처음 가 본 네덜란드의 평온한 소도시 하를렘은 기회가 온다면 또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았어. 또 가 볼 수 있을까?


네덜란드 출신의 재즈팝 뮤지션 바우터 하멜의 노래 ‘March, April, May’를 들으며 마무리할게.

https://youtu.be/2y-YqTC5W88

2018년 12월 17일. 형의 사랑하는 아우 재흥.

헴스테데를 말해 주는 풍경. 낮고 예쁜 집들과 곳곳을 흐르는 시내
정한 형네 집. 3층에 넓은 마당과 나무가 있는.
횡단보도에 있는 보행자 버튼.
운하와 자전거가 평범한 네덜란드
하를렘 출신의 Laurens Janszoon Coster 동상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시청 건물
시청 광장과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프란스할 박물관
아드리안 풍차
작은 카페 창가에서 커피와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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