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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흥 Jan 14. 2016

어울리는 우상

이소룡

형, 안녕!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더 춥네. 서울은 아침에 영하 9도까지 떨어졌었대. 요즘은 조금만 추워도 무슨 한파 주의보니 한파 경보니 해서 예전의 그 몸도 마음도 몹시 추웠던 겨울들보다 더 추운 거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해.      


오늘은 형의 우상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해. 누구 얘길 할 지 단박에 알아차렸겠지? 맞아. 형이 그토록 좋아하고 닮고 싶어했던 사람.

이소룡(李小龍. Bruce Lee). 본명은 이진번(李振藩)이라지. 신체 조건도 형과 비슷한 171cm에 61kg. 1940년 11월 27일에 태어나서 1973년 7월 20일에 사망했으니...아...이소룡도 형처럼 예수의 나이 33세에 떠났어...

이 얘기를 하자니 또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형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로 잠시 돌아가야 해.     

그게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아. 형의 입을 통해 ‘이소룡’이란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지. 어느 날 형은 손에 ‘쌍절곤(물론 그게 쌍절곤이란 건 형이 알려줬지)’을 들고 귀가했었지. 그날 이후로 형은 좀 바빠졌지. 나무를 구해다 의자를 만들고 시멘트를 구해다 역기를 만들고 나무 기둥에 짚을 둘러 정권 단련기를 만들고...나무나 시멘트는 거기에 있었던 게 아니고 형이 '그들'에게 다가선 거였어. 그래서 비로소 그것들이 의자가 되고 역기가 된 거지.


 얼마가 지나자 형은 ‘절권도 교본’이라는 책을 내게 보여줬지. “이 절권도가 이소룡이 만든 무술이다.” 형은 교본을 보며 독학으로 그 절권도라는 무술을 연마하며 열심히 근육을 만들었지. 사실 이소룡만큼은 아니었지만 형의 몸은 최고였어! 형 친구들 중에서 형의 몸이 가장 근사했잖아.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형 역기의 반만한, 귀엽고 앙증맞은 역기를 내게 만들어주었고 난 틈틈이 어린 몸으로 그 친구 같은 역기를 들었었지. 아주 드문 일이었어. 당시 내 친구들 중 의자에 누워 역기를 들어본 아이는 아무도 없었거든.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형이 이소룡에게 빠지게 된 건 아마도 어떤 영화를 보고나서였던 거 같아. ‘당산대형’이었을까, ‘정무문’이었을까, ‘ 맹룡과강’이었을까, ‘용쟁호투’였을까. 나중에 한 생각이지만, 이소룡 정도라면 형이 빠져버리기엔 충분한 인물이었던 것 같아. 훤칠한 인물도 인물이거니와 무엇보다 그의 멋진 근육과 몸짓이 형을 빨아들인 것이겠지.  형은 그의 동작은 물론 얼굴 표정도 일일이 모니터링하며 형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어. 형은 그를 흉내냈고 난 형을 흉내냈지.

https://youtu.be/pWNS4Ip_fhk

그 시절 이소룡에게 빠진 사람은 비단 형 뿐이 아니었을 거야. 남자라면 한 번 쯤 그의 괴성을 흉내내고 다닐 법했어. 나도 친구들 앞에서 종종 그 괴성을 내며 코흘리개들에게 이소룡을 전파하기도 했었던 생각이 나.

지금 생각해 보면 형에게 이소룡은 단순히 무술인, 영화배우가 아니라 탈출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 힘들었던 시절 가만히 있으면 견디지 못할 환경 때문에 이소룡을 받아들이고 근육을 만들고 발차기를 하고 주먹을 단련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였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형은 웃음을 잃지 않았고 가족 앞에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해 본 적이 없었지. 오늘은 형의 우상 이야기를 하고자 했으니 더 깊은 얘기는 다음으로 미룰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소룡은 형에게 너무도 어울리는 우상이었어.


그런데 형, 그거 알아?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형처럼 누굴 우상으로 삼아본 적이 없어. 왠 줄 알아?


형이 내 이소룡이었거든...


2016년 1월 13일. 형의 사랑하는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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